정치 세상

홍준표발(發) 무상급식 논란의 전모 전격 취재

daum an 2014. 12. 20. 13:38

무상급식을 둘러싼 경남도와 교육청간 공방이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홍준표 지사가 도교육청의 감사 거부를 빌미삼아 ‘무상급식 지원금 중단’ 선언하면서 시작된 무상급식 논란은 이제 전쟁이 됐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이 공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갚아야 할 빚’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여론몰이 중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아이들을 위한 결정인데 안타까운 것은 이 논리에 현재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경남지역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7년 동안 잘 받아왔던 무상급식이 갑자기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이같이 중차대한 문제를 놓고 동급의 기관장인 박종훈 교육감이 내민 화해의 손짓도 대놓고 묵살하는 등 외부와의 소통도 차단했다. ‘아이들 급식을 볼모삼아 갑(甲)질을 해댄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홍 지사의 무상급식 지원금 중단 선언을 대선 출마 노림수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무상복지 시리즈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 보수층의 심정적 지지를 획득하려는 전략적 시도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존재감조차도 희미하던 홍 지사는 ‘무상급식 저격수’를 자처한 이후 안철수 의원, 정몽준 전 의원을 끌어내리고 처음으로 5위로 올라섰다. 홍 지사의 무상급식 정책비판을 두고 대권과 연계시키는 이유다. 이에  홍준표발(發) 무상급식 논란의 전모를 취재했다.




홍 지사는 지난 3일 전국 처음으로 내년도 경남도 예산안에 ‘무상급식 지원예산’을 전액 편성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대신 기존 무상급식 예산은 서민과 소외계층 자녀에게 직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경남도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으면 내년부터 경남지역 학교는 무상급식이 중단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홍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감사 없는 예산은 없다’는 원칙아래 더 이상 무상급식 지원예산은 편성할 수 없으며, 이와는 별개로 기 계획된 무상급식 보조금 집행실태 감사는 이미 지원된 예산에 대한 감사이므로 결코 중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도교육청이 무상급식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지원을 거부한 만큼 도민의 의견을 모아 무상급식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 전환과 함께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경남만의 독자적인 교육비 지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무상급식은 ‘정치적 포퓰리즘이 빚어낸 산물’이라고도 했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은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라며 “보편적 복지라는 목적에도 무상급식 확대는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복지예산이 줄어들어 소득재분배 효과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또 “무상급식 확대 이후 급식의 질은 높아졌는가?”라며 “획일적 무상급식이 가져온 불필요한 과잉수요와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급식의 질보다는 대상 확대에만 급급한 인기 영합적 정책 결정이 결국은 우리 아이들이 학교급식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홍 지사는 “허투루 쓰이는 예산을 바로잡아 우리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고자 했던 무상급식 감사를 도교육청이 거부했다”며 “경남도는 무상(無償)의 허상(虛像)을 깨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수립하고, 무상급식은 교육청에 맡기고 우리 도는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경남만의 독자적인 교육복지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도교육청의 감사를 빌미삼아 아이들의 무상급식을 중단하겠다는 것인데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무엇보다 동등한 지위에 있는 도교육청을 감사한다는 발상자체가 억지스럽다. 헌법 등 현행 법률에는 ‘도지사와 교육감은 동등한 기관으로 상호간 감사권이 없다’라고 명시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말밖에는 달리 해석이 안 된다.


감사에 대한 사전 방식도 문제투성이다. 도는 지난 10월 21일 ‘학교 무상급식 특정감사 계획’을 언론에 발표했다. 동등한 기관을 감사한다는 발상자체도 문제지만 이런 중차대한 계획을 도교육청과 사전 조율도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는 것은 작정하고 덤벼든 것으로 밖에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도교육청은 같은 날 ‘도청의 특정감사 재검토 요청’을 유선으로 통보했지만, 다음날인 10월 22일 도는 ‘감사 강행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도교육청이 한참 양보해 ‘합동감사’까지 제의했으나 이마저도 거절하고, 이달 3일 급식중단을 선언했다.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이처럼 중차대한 일들이 고작 10여일 만에 절차나 납득할 이유도 없이 홍 지사의 독단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도교육청은 홍 지사의 급식중단 선언을 이해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급식중단을 선언할 만큼 쟁점이 됐던 사항들도 없다. 도가 주장하는 감사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안 받는 게 아니라 받을 근거가 없다. 도는 ‘학교급식지원조례’ 가운데 지도·감독 규정을 내세워 감사할 수 있다고 억지를 쓰지만, 이는 헌법에 반하는 상식 밖의 행동이다.



그리고 도는 지금까지 꾸준히 정기적인 지도·감독을 해왔다. 도교육청은 조례에 따라 급식비를 적정하게 집행하고 남는 지원금은 정산해 지난 3년간 45억 원을 도에 반납했다. 아울러 매년 서류 검토 및 학교방문 실태 점검을 통해 지도·감독을 받아왔다. 하등 문제 삼을 게 없다.


심지어 도에서는 잔반 처리비용 증가를 이유로 급식의 질 저하를 주장하는데, 다소 구차스러울 정도다. 2013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도교육청 ‘음식의 맛, 식재료 품질’은 전국평균보다 높았고, 잔반 처리비용은 전국 평균 증가폭보다 20%나 낮았다. 사실상 홍 지사가 아이들의 밥상을 걷어차야 할 만한 쟁점사항이 없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권 연계 의혹이 힘을 받는 이유다.


홍 지사는 이번 ‘무상급식 지원 중단’ 카드가 성공할 경우 ‘보수의 대표주자’로 입지를 굳힐 수 있다. 더 나아가 차기 대선 후보로서도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홍 도지사가 ‘청결한 무상급식 지원비’란 명분을 내세워 도교육청을 압박했고, ‘무상급식 지원 중단’ 카드를 꺼내 보수층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한 꼼수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새누리당은 전체적으로 복지 공약을 선거에서 내세웠다. 정통 보수층은 복지 공약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여기서 홍 지사는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선언하며 제동을 걸었다. 홍 지사가 승부수를 건 것과 다름없었다. 복지 프레임을 달가워하지 않는 정통 보수층들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무상복지 논쟁에 불을 붙이자말자 홍 지사의 지지율은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홍 지사는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지난달 말부터 꾸준히 지지율이 오르면서, 안철수 의원과 정몽준 전 의원을 밀어내고 지지율 5위를 기록했다. 독보적인 차기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보수층이 반응할만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요인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아이들 밥상을 걷어차고 얻어낸 대가치고는 치졸하다는 비난도 들려온다. 급기야 시민단체까지 들고 일어났다. 정치적 노림수에 아이들 급식이 볼모로 잡혀있기 때문이다. 지역 학부모, 소비자, 교육, 노동, 환경 등 경남지역 30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24일 ‘친환경 무상급식 지키기 경남운동본부’를 창립, 삭감 예산 원상회복을 위한 투쟁을 본격화했다. 


경남운동본부는 이날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창립 기자회견을 열어 경남도의 지원 중단을 철회시키려고 앞으로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단 면담을 추진하고 다음 달 초 18개 시·군 운동본부를 결성, 시·군청을 항의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엔 또 학부모, 학생, 생산자 등 500명이 참여하는 원탁회의를 개최하고 경남도 지원 중단의 부당성을 알리는 인간띠잇기 등 거리 선전전을 펴기로 했다. 같은 달 13일에는 창원 일원에서 무상급식 지키기 범도민 걷기대회를 열기로 했다. 경남도가 끝내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한다면 주민 투표를 통해 주민 소환운동을 벌이겠으며, 주민세 납부 거부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남운동본부는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 70여 명은 “홍준표 지사는 아이들 밥그릇으로 더 이상 장난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오늘 할 말을 많이 준비해 왔으나 말을 해서 무엇하겠나하는 생각이 든다, 도지사가 못된 행사머리를 하고 있는데 혼내줘야 한다”며 “학부모들을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말고, 예산지원을 정상화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머니들이 도청 앞에 드러누울 것”이라고 강격한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회견문을 통해 “무상급식 문제는 아이들에게 밥 한 끼를 공짜로 제공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무상급식은 밥 한 그릇을 통해서 농부의 수고로움과 하늘의 은혜로움,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이치를 함께 배우도록 살아있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준표 지사에 대해서는 “유권자인 학부모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 당시 선거출마자 정책토론회에서 약속했다, 이미 무상급식은 전 국민적 합의가 끝난 사안이고 따라서 본인도 국민의 뜻에 따라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 더 이상 본인의 정치적인 행보와 연결 지어서 아이들 밥상을 걷어차는 치졸한 행보를 하고 있는 비난을 자초하지 말라”며 “무상급식은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 차질 없이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무상급식은 교육적 의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함으로써 지역의 친환경농업이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과 무너져가는 농업, 농촌을 살리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며 “무상급식 예산지원 전면 중단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홍 지사가 박종훈 교육감을 만나 무상급식 문제를 대승적 차원에서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정치적 논리가 아닌 교육적 관점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중장기 해법을 모색해 달라고 요구도 나왔다.


또 홍 지사는 정부를 설득하고 국비 지원을 요청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급식을 잘 먹을 수 있도록 도지사로서 책임지겠다는 통 큰 결단을 내려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홍 지사가 끝내 마음을 고쳐먹지 않고 무상급식 중단을 강행한다면, 도내 수만 명의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거나 급식비를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지난 7년간 시행하고 있는 학교급식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내년에 도와 시·군이 식품비 804억 원을 지원하지 않을 경우 21만9000명, 경남도만 322억 원을 중단할 경우 약 5만 명의 급식 지원에 차질을 빚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