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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신부님, 반지성적 행동을 접어주세요”

daum an 2009. 6. 27. 21:26

“함 신부님, 반지성적 행동을 접어주세요”
칼럼니스트가 자살미화한 함세웅 신부님에게 보내는 쓰고도 쓴소리
 

 

일부러 볼래서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웹진 ‘희망세상’ 6월호를 접하고 함세웅 신부님이 쓴  ‘선택과 결단의 죽음’이란 글을 읽었다. 고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함 신부님이 굳이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얘기를 다시 꺼내 최상의 언어로 이를 찬미하며 고인의 죽음에 기대어 무엇인가를 노리고 있어 한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 최고 지성인인 함 신부님의 반지성적 행동이 하도 역겨워서 말이다.
 
그는 글에서 지난 5월 23일 “김재규 장군 기일 하루 전 경기도 광주 삼성공원묘지에서 29주기 추모제를 지냈다”고 서두를 꺼냈다. 그러고 나서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핵 박정희를 제거한 역사적 의미와 목숨 걸고 결행한 ‘민주혁명’ 그 미완의 뜻을 되새긴다”고 썼다. 필부필부도 아닌 성직자의 입에서 조폭들이나 쓰는 섬뜩한 말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고 일국의 대통령 시해범을 추모하며 민주혁명을 선동하는 지성인 함세웅 신부님의 반지성에 나는 실망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희망세상’에 들어갔다가 희망은커녕 절망만 하고 나왔다.
우리 민족은 고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대하다. 살아생전 죽일 놈 살릴 놈 하다가도 고인이 되면 영전 앞에 무릎 꿇고 머리 숙이는, 정에 약한 이 민족의 묘한 심리현상이다. 그러하기에 노 전 대통령이 자살로 세상을 하직했음에도 생전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많은 추모객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그의 죽음을 어떤 기회로 삼으려 했고 지금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함세웅 신부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 명동성당 미사장면 . 가톨릭은 자살을 금기시 한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그럼 우선 박 전 대통령 얘기부터 꺼내보자. 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들은 70년대 경제발전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소위 개발독재가 불가피했음을 인정한다. 이 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그런 상황인식이 요구된다. 그러나 함세웅 신부님은 그런 상황인식은 커녕 망자 앞에서 관대해지는 민족의 품성마저 상실한 채 김재규의 박 전 대통령 시해를 무슨 쓰레기 치우듯 “제거했다”고 독설하고 있다. 그런 걸로 보아 그는 박 전 대통령을 지독하게 미워했고 지금도 증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용서와 화합을 전파해야 할 신부님이 이처럼 지저분한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누가 일러 그를 성직자라고 할 것이며, 성스럽고 숭고한 신부님의 입에서 조폭들이나 쓰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누가 그의 강론을 거룩한 주님의 말씀으로 신뢰할까.   
 
모르긴 해도 함 신부님은 유신시절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욕을 해댔을 것이다. 김재규는 당시 중앙정보부장으로서 소위 유신독재의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김재규는 자신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불신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발적 충동에서 그를 시해했다. 그러다가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자 죽는 마당에 그냥 죽을 수 없다며 최종 진술을 통해 자신의 박 전 대통령 시해를 ‘민주혁명’으로 미화시켰다. 함 신부라고 이를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시류에 민감한 함 신부님은 김재규의 죽음을 기회로 삼으려고 표변해서 과거 김재규에게 품었던 악감정을 숨기고 그를 민주혁명의 기수로 치켜세우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유서에 대한 함세웅 신부님의 미화도 그렇다. 그는 ‘선택과 결단의 죽음’이란 글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절제된 언어의 아름다운 시 구절”이라고 미화하며 “장례기간 내내 유언의 깊은 뜻을 묵상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한 평생 거침없이 살아왔던 그가 죽음 앞에서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는가”고 반문하고 “그런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 말을 아끼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줬다”고 덧붙이고 있다. 평소에 말 많던 그가 죽음 앞에서 할 말이 많았을 것임에도 짧은 유서로 언어를 절제한 것이 멋져 보였다는 말로 읽힌다.
 
그러나  아무리 평소에 말이 많은 사람이라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장광설을 늘어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함 신부님은 노 전 대통령의 짧은 유서에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평소 말 많은 노 전 대통령이 할 말을 절제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억울함이 많았던 것처럼 암시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려 한다. 우리 모두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어떤 경우에도 자살은 미화될 수 없다. 기독교나 가톨릭에서도 자살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로 죄악시된다.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심부름꾼인 성직자가 자살을 미화시킨다면 이보다 더 큰 죄악은 없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신이 소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스스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훈계한다. 플라톤은 “자살은 신체에서 스스로 영혼을 풀어주는 행위로 신의 뜻에 위배되는 잘못”이라며 “그래서 자살이란 매우 수치스러운 행위이기에 자살자는 묘비도 없이 묻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살은 불법적인 것이고 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죽음 앞으로 다가서는 동기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현실도피로서의 자살을 경계한다.  성경에도 ‘인간은 생명의 소유자일 뿐 생명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기록돼 있다.스스로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고 죽음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함세웅 신부님은 노 전 대통령이 “그 스스로 하늘의 명령을 오히려 앞당겨 삶과 죽음을 넘어 초월의 경지에서 결단을 내렸다”며 자살을 미화시키고 있다. “하늘의 명령을 앞당긴 것이지 거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자살은 죄악이 아니라”는 현학적 표현으로 언어의 유희 속에 우리를 농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족이 연루된 뇌물 수수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어 사법처리 직전에 이르렀다. 그는 뇌물스캔들로 그의 상징처럼 돼 있는 청렴성과 도덕성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현실도피적인 자살이었다. 그러나 일국의 지도자가 죽음의 방식으로 자살을 선택한 것은 적절치 않다. 죽고 싶어도 자기 맘대로 죽을 수 없는 것이 한 나라의 지도자다. 지도자의 죽음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 살신성인할 때 고귀한 것이다.
 
그럼에도 함 신부님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미화하는 가운데 “결단의 선택을 운명”이라고
말하면서 “운명은 뜻밖의 사건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며 이 사건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가 펼쳐진다”고 말함으로써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어떤 기회로 이용하려 들고 있다. 사랑과 용서와 화합을 말해야 할 주님의 심부름꾼이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함세웅 신부님이 스스로 의도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흔적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선택과 결단의 죽음’이란 글의 요지도 함 신부님이 의도한 민주화에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민주화와 그  방식을 우리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경부선을 타고 부산으로 간 다음 배로 들어가는 길과 호남선을 타고 목포로 가 다시 배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으며, 김포에서 비행기로 직행하는 방법도 있다.
 
마찬가지로 민주화(비민주적인 요소가 있다면)를 이룩하는 데에도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 점진적으로 달성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혁명에 의해 급진적으로 이룩하는 길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도 더디긴 하지만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합리적이고 생산적이다. 그러나 함 신부님은 소위 민중혁명에 의한  사회주의혁명을 민주화로 선택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그를 거부한다. 함 신부님이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그는 사랑과 용서와 화합을 전파하는 성직자이다. 그런 그가 민중혁명 방식으로 민주화(사회주의)를 이룩하겠다고 나서다니, 그래서 우리는 그가 추구하는 민주화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함세웅 신부님은 2007년 1월 한겨레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권이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잘못하기만 했고, 그 결과 퇴보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직접 뽑은 대통령이기에 그가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돕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했던 함 신부님은 지난 6월 10일 그가 공동이사장으로 있는 ‘6월 민주항쟁 계승 사업회’등과 공동 주최로 대한성공회대성당에서 가진 6월 민주항쟁 기념 22주년 기념식에서 ‘이명박 정권 타도’를 외쳤다.
 
그의 말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가 직접 뽑았기 때문에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가 직접 뽑지 않고 쿠데타라도 일으켜서 정권을 장악했기에 타도해야 한단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많은 500만 표 이상으로 상대방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런 대통령을 임기 1년 남짓 마당에 타도해야 한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 나라 최고 지성인인 함 신부님은 반지성적인 행동을 그만두고 8천만 겨레가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는 복음전파에 힘써야 한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절제된 아름다운 시 구절”이라고 찬미한 함 신부에게 미국 사람들이 즐겨 읊는 ‘마음속의 추위’라는 다음 요지의 아름다운 시 한 수를 들려주고 싶다.

“여섯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춥고 어두운 곳에 지팡이를 하나씩 가지고 모두 갇히게 됐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 앞의 모닥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 때 지팡이를 의식한 한 여자가 자기 것을 꼭 움켜쥐었다. 그들 가운데 흑인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지팡이를 태워 흑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두 번째 사람은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말은 교회에서나 실천하지 거길 벗어나면 그만이었다/세 번째는 남루한 옷을 걸친 사람이었다. 그는 “흥, 저 게으름뱅이 부자들을 위해 왜 내가 희생해야 해” 하고 중얼거렸다/네 번째는 부자. 그는 자기가 모은 재산에 대해서만 골똘히 생각했다/다섯 번째 사람인 흑인은 불기가 사라져 가는 것과는 반대로 백인들에 대한 복수심만 뜨겁게 타올랐다/여섯 번째 사람은 다른 사람들 것은 놔두고 자기 지팡이만 태우는 일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결국 그들은 각자의 지팡이를 움켜쥔 채 모두 죽어갔다“
 
그리고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들은 바깥의 추위 때문이 아니고 마음의 추위 때문에 얼어 죽었다“
 
상대에 대한 증오와 편견과 적대감은 결국 남과 함께 자신도 파멸로 몰고 간다. 우리는 이 나라 최고 지성인으로서의 함세웅 신부님이 우리 사회에 갈등과 불화와 반목과 알력, 그리고 증오와 적대감을 부추김으로써 바깥 추위가 아니라 ‘마음의 추위’로 모두를 얼어 죽게 하는 반지성적 행동을 접어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처:브레이크뉴스 김영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