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세상

" ‘노짱’ 가는 길을 촛불로 밝혀드립니다"

daum an 2009. 5. 27. 23:51

" ‘노짱’ 가는 길을 촛불로 밝혀드립니다"
<추모칼럼> 수필가 유영희, 아아! 노무현!

 

유영희.수필가 /브레이크뉴스

 

“대통령을 퇴임하는 나는,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권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민사회 속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올려진 ‘미완의 꿈’이라는 동영상에 나오는 말입니다.

시민사회! 권력구도 중 다수의 사람이 모여 형성된 계층으로 가장 힘없고 나약한 권력이 바로 시민사회 권력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날입니다. 시민사회 계층은 목에 피가 터지도록 진실을 말해도 한갓 변명으로 밖에 치부되지 못하기에 스스로 몸을 태우고 부수어야만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을 당신은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종일 TV 앞에 앉아 고인이 되기까지 당신의 행보만 보고 또 봅니다. 생각의 창구는 철저히 그 문이 닫혔나 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말 외에는 그 무엇도 스스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단 하나, 당신에게 부엉이바위 끄트머리에서, 허공에 발을 디디도록 만든 시대의 상황에 분노할 뿐입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입구에 놓여있는 촛불들.     ©사진공동취재단


이 역사 위에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와 살과 으스러진 뼈가 재물이 되어야 시민사회가 진정한 권력집단이 될까요. 당신이 말했던 절반의 민주주의는 성큼 뒷걸음질을 쳤고 우리는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절벽 그 아득한 곳에 모든 절망과 고뇌와 한숨과 숨결마저 놓아야 했던 당신의 고통 앞에, 말장난에 불과할 언어가 무슨 애도가 되겠습니까? 시민사회권력이 겪은 이 참혹한 비극 앞에서 생각을 또박또박 정리하며 기가 막힌 언어로 마음을 표하는 신비한 재주가 내게는 없습니다. 비통한 마음은 하늘에 가닿는데 말은 혀 밑에 갇혔습니다.

차라리 당신을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나 봅니다. 차라리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며 무명의 후원금을 보내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오늘이 이렇게 처참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이 밤, 우리는 길 없는 길을 밟으며 촛불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가자던 약속을 저버리고 훌쩍 우리 곁을 떠나버린 ‘노짱’의 가는 길을 우리는 촛불로 밝혀드립니다. 태양인 줄 알았습니다. 동토의 땅에 자유민주주의 깃발이 펄럭이며 시민사회 권력이 진정한 권력으로 부상되리라 믿었습니다. 그 선봉에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누가 있어 우리의 꿈길에 빛의 길잡이를 해줄는지요.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 하셨지만 우리는 엄연히 다른 세상을 밟고 있습니다. 당신이 훌훌 벗어버린 삶의 껍질을 우리는 여전히 뒤집어쓰고 분노하며 원망을 버리지 못하며 울고 있습니다. 작은 비석이 되어 지켜만 보신다면 시민사회 권력이 겪는 아픔을 누가 어루만져 준단 말입니까.

거리 한 모퉁이 세워진 빈소에 들러 흰 국화 한 송이를 당신의 영정에 바쳤습니다. 떠나버린 이를 차마 보내지 못해 애끓는 울음이 거기 있더군요. 이제는 편안히 안식하소서. 겪었던 모든 치욕을 떨치고 숱한 불면의 밤도 마침표를 찍었으니 부디 편한 잠 이루소서.

민중의 생명력은 잡초처럼 강하니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지키지 못한 아픔만큼, 추모하는 깊은 마음만큼 우리는 오래오래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아니, 역사의 흐름이 멎는 그날까지 이 땅의 역사가 당신을 위해 증언할 것입니다.

먼 발치였지만 어느 행사장에서 보았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려 봅니다. 최고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 아니라 선뜻 다가갈 수 있는 따뜻하고 소탈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이웃집 아저씨가 거기 계셨지요. 그날 만났던 자연인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봅니다.

“아아! 노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