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

[JIFF상영작리뷰]'돼지가 있는 교실', 일본판 '죽은 시인의 사회'

daum an 2009. 5. 7. 21:11

[JIFF상영작리뷰]'돼지가 있는 교실', 일본판 '죽은 시인의 사회'
'생명의 학습' 실화 소재로 다큐멘터리 감성으로 유아기 성장통 조명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선보였다. 작품성과 함께 대중성을 갖춘 영화를 초청하는 '영화궁전' 섹션에 초청된 마이다 테츠 감독의 영화 <돼지가 있는 교실>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 먹는 가축에 생명의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1년간 돼지 사육을 통한 체험학습을 소재로 하고 있다.
 
유아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아이들의 성장통과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고 결정하도록 하는 교실 안에서 민주주의라는 사회화 과정을 들여놓은 교육방식이라는 점에서 기존 주입식 교육을 탈피해 창조식 수업을 채택해 일본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인상이 깊었다.
 
얼마 전 동경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감독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삶에 대한 시선이 느껴지는 이 영화는 몰입식 교육과 사교육 열풍으로 멍든 우리의 현실과 비교되면서 최근 TV를 통해 봤던 일본 혼슈 북서부에 위치한 '아키타 산골학교의 기적' 다큐멘터리가 문득 떠오른다. 맞벌이 부모 슬하의 아이들은 자연에서 맘껏 뛰놀며 지자체와 학교의 지원으로 사교육 없이 동경 등 대도시 학교들을 제치고 일본 초등학교 전국 학력평가에서 1위를 기록했던 것.

 

 

토마토를 좋아하는 돼지, P짱 - 영화 '돼지가 있는 교실' 중에서     © JIFF2009

 
 
 
 
 
 
 
 
 
 
 
 
 
 
 
 
 
 
 
 
 
 
영화 초반의 이야기 전개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돼지의 움직임을 따라가다보니 경쾌하다. 특히, '생명 존중'이라는 주제의식과 함께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위트는 영화 후반부 눈물을 쏙 빼는 학급회의 장면과 어우러져 어린이날 연휴에 전주를 찾은 아이들과 시네틸들에게서 두 차례 커다란 박수 갈채를 이끌어냈다.
 
지금은 신종 인플루엔자로 밝혀진 '돼지독감' 해프닝으로 한 때 떠들썩했던 국내에서 돼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꽃미남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출연해 교실, 아니 학교 내에 돼지 사육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아이들의 성장담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다.
 
닭이나 고양이, 개가 아닌 돼지의 선택은 곧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생을 모델로 할 때 그 생각이나 신체의 성장 속도면에서 닮아 필연적이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은 돼지를 기르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들을 스스로 풀어나가고 자신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구분해 나가면서 감정적이었던 말이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점차 표현력이 풍부해진다.
 
토마토를 좋아하는 돼지에게 'P짱'이란 이름을 지으면서 더 이상 돈육이 아니라 돼지를 대한는 태도 역시 가족, 학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진화한다. 가족같은 소와 이별하는 노인의 1년간 이야기를 그린 우리의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 <워낭소리>처럼 급우가 되어버린 친구같은 돼지와 1년간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담임 선생으로 부임한 호시(츠마부키 사토시 분)는 6학년 학기 시작 전에 아이들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 돼지를 함께 키우고, 다 크면 잡아먹자'며 교탁 위에 돼지 한 마리를 올려 놓는다. 아이들이 돼지를 P짱이라 부르고 교장 선생님이 당초 돼지 사육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동의를 구하는 지원에 힘입어 학교 울타리 안에서 돼지와 공놀이도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등 추억거리를 만들어간다. 


 

 

▲ 하나라는 아이가 무단으로 산책시킨 P짱을 데리고 학교로 되돌아가는 호시(츠마부키 사토시 분)와 6학년 반 아이들     © JIFF2009


하지만 돼지 사육을 하면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도 만만치않다. 전학생 '하나'가 축사에 갖힌 돼지를 무단으로 끌고 나가 산책시키는가 하면 태풍이 불어 바람에 축사 지붕이 날아가고 추위에 떨 P짱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걱정과 달리, 뒤늦게 사실을 알고 달려온 호시 선생에게 '갑갑할까봐'라는 외톨이 동급생의 말에 의리를 지키며 친구 탓을 않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변명을 대신한다
 
길거리에 P짱을 찾아나선 아이들의 안타까운 표정이 자신들에 의해 발견돼 학교로 돌아오는 장면에선 체험학습을 통해 얻는 그들만의 행복감이 내비친다. 또한, 태풍으로 인한 축사에 갇힌 P짱을 위해 비바람을 뚫고 누구라 할 것 없이 학교에 나와 담임 호시와 협동해 축사 지붕에 벽돌을 얹는 등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단순히 선의의 거짓말에 그치지 않고 친구를 배려하고 협동하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은 정치, 사회 각 분야에서 네탓 내탓 공방만 일삼는 어른들이 겸손히 배워야 할 덕목 아닐지 모르겠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P짱을 육식센터에 보낼지, 후배들에게 물려줄지 결정하는 학급회의 장면에서는 스스로 의논하고 다양한 입장에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카메라앵글에 돋보인다.
 
아이들은 P짱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선택 문제로부터 점차 고기로 먹는 방법과 가족같은 P짱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 이르기까지 성숙한 자세를 나타내며 그 동안 경쾌했던 카메라의 움직임도 찬성-반대 구분없이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들의 의견과 표정을 하나씩 읽어내면서 '어른 못지 않은' 아이들의 생각에 놀라움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블러 일으킨다. 

 

 

▲ 졸업식을 앞두고 P짱을 육식센터에 보낼지, 후배들에게 물려줄지 결정하는 학급회의에 진지한 호시 반 아이들     © JIFF2009

 
영화제 GV(Guset Visit)에 나선 마에다 테츠 감독은 "호시가 담임을 맡은 반 소속 26명의 아이들을 캐스팅 하기 위해 두 달 반 가량이 소요
됐다"고 전하면서 "극중 교실에서 학급 회의장면은 백지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맡겼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 "선생님, 생명의 길이는 누가 정하죠?"라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이어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P짱 처리에 대한 의견들은 26명의 다채로운 캐릭터가 자연스레 연출된 것이다.

실제 1990년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돼지 사육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에서 감독 역시 주입식 연출보다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선생님처럼  창의적 수업을 통해 다큐멘터리적인 감성을 입혔다고 할까.

상영작리뷰

출처:브레이크뉴스 정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