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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투어-6일차]몽골 라마불교의 총 본산 '간등사원'을 가보다.

daum an 2019. 9. 16. 16:58

몽골 울란바트로 시티투어 마지막 투어 코스로 일행들은 역사적으로 1930년에 있었던 공산정권의 종교적 억압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사원으로 유명하며 울란바타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라마불교의 대표적 중심사원인 간등사원을 관람했다.


간등사원은 (간단사)로 불리우며 종교적 억압을 이겨낸 몽골의 유일한 사원으로 17세기에 설립된 간단사는 라마불교 사원으로 정식 명칭은 간등테그친른히드이며 완전한 즐거움을 주는 위대한 사원의 뜻을 지니고 있다.






















간단사 내에는 24m의 불상과 몇 개의 작은 절 그리고 학승들이 공부하는 종교대학이 자리잡고 있으며 약150여명의 라마승들이 거주하고 있다.

몽골은 다양한 종교 단체가 활동을 하고 있으며 몽골 정부에 등록된 단체만 해도 200개 이상이 될 정도로 많지만 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믿고 의지하는 종교는 라마교이며 현재 몽골의 인구 90% 가량이 라마교를 믿고 있다.


라마불교는 1230년경 어거데이 왕에 의해서였고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에 의해 티벳트가 점령되고 불교의 최고 지도자였던 파스파를 초청하였다. 이 시기에는 일부 지배층에만 불교가 전파되었고 대중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여전히 대다수의 몽골인들은 샤머니즘을 비롯한 전통신앙을 숭배했다.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시기는 16세기 말 때부터이다. 당시 티베트 불교 지도층은 몽골 쪽으로 관심을 보였고 몽골 왕들이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몽골인들에게 빠르게 자리 잡아 나가게 된다. 이후 1635년에 태어난 자나바자르가 불교 왕으로 등극을 하였고 이때부터 불교문화는 꽃을 피우게 된다. 하지만 몽골은 불교가 중심을 차지한 가운데에서도 샤머니즘은 민간신앙으로 형성되는 모습을 현재까지도 보여 지고 있다.


18세기~19세기에 이르러서는 맏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라마승이 될 만큼 남자 인구의 3분의 1이 라마승이었을 만큼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사회주의로의 체제변환으로 불교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게 되고 스탈린시대에는 엄청난 종교적인 탄압을 받게 된다. 이 기간에 약 20,000여명에 달하는 승려가 체포, 구금, 처형을 당했고 750개의 사원 대부분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파괴되거나 군인 막사, 마굿간 등으로 쓰여 지게 된다. 비공식적으로는 훨씬 많은 승려가 처형당했다고 한다.


1944년에는 울란바토르에 있는 간단사원을 복구시켰지만 몽골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모습이었고 1990년까지도 계속 된다. 이후 몽골은 정치적인 민주화 운동과 함께 전통문화의 복원적업이 활발히 전개 되고 민족주의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회주의 시절에 탄압받았던 종교와 신앙을 복구하기 시작을 했다.


1996년 10월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약 26m 높이의 거대한 청동 불상이 완성되었는데 몽골 독립수호 상징이라는 이름으로 몽골 정부의 지원금과 일반 국민들의 성금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현재 많은 사원들이 건립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70년의 세월을 겪고 자본주의로의 체제변화 속에서 외래종교가 많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몽골은 예전부터 샤머니즘이 번성한 지역의 하나로 꼽힌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과 기후는 이들로 하여금 자연숭배, 조상숭배, 천신숭배 등의 각종 민간신앙이 자리 잡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몽골지역의 경우 천신과 결합된 샤머니즘은 사람들의 정신세계 뿐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불교가 자리를 잡는 와중에서도 샤머니즘은 여전히 불교와의 관계 속에서 이어져 내려온다. 하지만 샤머니즘이 결정적으로 쇠퇴한 계기는 1921년 사회주의 혁명이후 샤먼들의 활동은 법적으로 규제가 되었다.


전면적인 종교 탄압 속에서 많은 샤먼들이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은 샤먼들은 자신의 신분을 은폐하기 위하여 의복이나 의례도구를 불살라 없애는 등 표면적으로 샤먼은 소멸되었다. 1990년 이후 자본주의 체제로의 변화로 샤머니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게 되었지만 몽골 전통 신앙의 하나로서 여전히 몽골 사람들의 생활에 묻어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몽골인들이 최초로 접한 기독교는 동방 기독교라 불리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이다. 12세기에 처음 전해진 이후 몽골과 원나라 황실의 부녀자들 사이에서 많은 신자를 확보했고 13세기 중엽에 몽골을 방문한 프란시스파 교단의 월리엄 루브룩에 의하면 몽골에는 많은 기독교들이 살고 적지 않은 몽골 귀족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원나라가 망하고 다시 초원으로 돌아간 몽골인들에게 기독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보아야한다.


이 후 1990년대에 들어와 몽골지역이 개방되면서 몽골인들 사이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개신교는 선교활동을 벌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현재에도 많은 선교 활동이 몽골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 수는 많지 않지만 회교를 신봉하는 카자흐족이 몽골의 서부 지역에 분포 되어있으며 대부분이 19세기 후반에 중국 신강성에서 몽골로 이주한 카자흐인들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울란바트로 시내 외 지역에 약 8000명의 회교도 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5개정도의 모스크가 있다.


간등사원은 울란바토르와 그 역사를 같이하고 있는 울란바타르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1930년대 라마교탄압시대에 유일하게 법회가 열린 사원이다. 울란바토르의 원래 이름은 ‘이흐후레’라 했는데 뜻은 ‘큰 울타리’로 간단사의 담장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살기 시작하자 명명된 것이라 한다. 17세기 복드왕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시기는 분명치 않으며 한때는 5천명의 승려가 머물 만큼 몽골 최대의 라마사원이기도하다. 법당 안에 높이 24m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과 여러 개의 작은 절, 스님들의 기숙사, 그리고 부설 불교대학이 있다. 간등사원은 불교신자 뿐만 아니라 몽골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울란바타르의 중심 사원인 만큼 연중 내내 다양한 종교행사가 열려 볼거리가 많아 항상 사람들로 붐비며 관음대불전은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보그트 칸이 세운 전각이다.몽골 울란바타르(Улаанбаатар) 라마불교 간등사원내 관음대불전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 됐으며 적발시 몽골 돈이아닌 한국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몽골 현지 여행 전문엔조이몽골투어 이연상 대표 (976)9111-1234/070-8692-9001/070-8526-2057로 연락하시면 몽골여행 모든것을 책임지며 무엇보다 관광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현지에서는 김욱 대표(010-2807-4242)와 안기한(010-7530-0078) 대표에게 문의하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몽골 기본 투어과 아닌 단독투어 일정으로 고객을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