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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투어-5일차]칭기즈 칸 마동상을 감상하다.

daum an 2019. 9. 16. 14:52

[몽골투어-5일차]칭기즈 칸 마동상을 감상하다.멀리서도 육안에 들어오는 칭기즈칸의 마동상은 웅장하고 용맹스러운 장수로 다가온다.일정이 바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기념촬영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관광객팀들은 이곳 박물관을 관람하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칭기스칸의 얼굴을 마주 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 말 머리에 있는 기마상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칭기스칸의 얼굴가 마주한다.칸의 얼굴은 너무도 크고 웅장해 용맹스럽게 보여진다. 몽골인들이 칭기스칸을 존경하고 숭배하는 이유는 몽골제국을 통일해서가 아니라 그의 용맹스러움과 리더쉽이 아닌가 필자는 생각해 본다.



칭기즈 칸((成吉思汗:1162-1227년)은 본명이 테무친(鐵木眞)으로 몽골 부족장이었던 예수게이(也速該)의 아들로 태어나 1206년 몽골 제국을 통일하고 대칸(大汗)에 즉위하여 칭기즈 칸이라 칭했다.


그는 카라키타이, 호라즘이 자리하던 동·서 투프키스탄, 남러시아와 서아시아의 일부, 황허 이북의 북중국, 만주, 몽골을 아우른 대제국을 건설했으나 서하(西夏)를 정벌하러 나섰다가 1227년에 병사했다.



징기스칸 마동상은 몽골 건국 800주년인 2006년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2010년에 완공됐다.10m 높이 건물위에 세워진 40m의 징기스칸 마동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마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기념관 위에 우뚝 선 세계 최대의 칭기즈 칸 장군상은 250톤의 강철로 만들었는데 내부에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어서 말 머리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가 있다.



몽고의 남자들에게는 말채찍이 아주 중요한데 칭기스 칸이 17세 때 원정길에 나섰다가 황금 말채찍을 발견했다는 전설이 깃든 장소에 건립된 기념관은 2단의 원통형 전시관 위에 스테인리스 스틸 기마상을 세워놓았다. 기념관 아래 단 외벽의 36개 반원통형 기둥은 칭기스 칸 이후 몽골을 통치한 서른여섯 명의 칸(왕)들을 상징한다. 기념관 주변에는 몽골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테마파크가 조성될 예정이다.


한 손에 황금 말채찍을 든 칭기스 칸의 기마상은 말의 네 발이 모두 지면에 닿아 있었다.



그것은 기마상의 주인공이 전사했을 경우에는 말이 앞 두 다리를 번쩍 들게 하여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이나 후유증으로 사망하면 한쪽 다리를 들게 하지만, 지병이나 노환으로 사망했을 때는 네 발을 모두 지면에 붙이게 디자인을 한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한 칭기스 칸은 몽골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후에도 원정을 지속했지만 67세의 나이에 병사했기 때문에 기마상을 정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이 칭기스 칸 기념관은 국가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한 민간인이 자본을 들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5$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내부에는 250 마리의 소가죽으로 만들었다는 길이 6m에 9m 높이의 가죽 장화와 4m 길이의 말채찍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지하에는 유물 전시관이 있다.


몽골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즈 칸은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없애 버리고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 칸이 되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역시 칭기스칸은 몽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지금까지 몽골 국민들로 부터 존경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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