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넘는 박달재' 작사 대중가요 국보1호 |
<본지 밀착 인터뷰>5천여 곡 작사한 작사가 반야월 노래인생 |
“보따리 속에 너무 많은 게 들어 있다. 노래 보따리, 이야기 보따리. 난 노래에 미친 사람이다.” 대중가요계 인간문화재 국보 1호, 반야월(93세, 작사가, 본명 박창호) 선생(이하 존칭생략)의 첫 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확 잡아당긴다. 자신을 당당히 말한 그 한마디 그대로 노래에 미쳐 산 반야월은 우리 가요계의 뿌리다. 데뷔한 지 70주년, 가수이자 작사가인 그는 옛정을 켭켭이 감고 있는 은백의 신사다. 정이 살아 숨을 쉬는 그와의 인터뷰는 3차의 술자리로 이어지면서 진행했다.
지난 4월 3일, 한국가요작가협회와 한국가요작가동지회, 전체 가요인들은 ‘인간문화재 국보 1호’ 기념패를 제작하여 반야월에게 전달했다. 1세대 가요인으로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는 반야월은 가요계의 역사를 한 몸에 담고 있다. 1939년 태평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불효자는 웁니다’ 음반 노래를 시작으로, ‘사막의 애상곡’ ‘마상 일기’ ‘꽃마차’ ‘넋두리 이십년’ ‘고향만리 사랑만리’ ‘화물선 사랑’ ‘세세연연’은 그의 가수생활 대표곡들이다.
그 후 작사가 반야월로 본격적인 노랫말을 썼다. 그의 노랫말은 5.000곡, 협회에 등록한 곡은 900여곡에 달한다. 전국에 세워진 그의 노래비에 적힌 대표곡은, 마산의 ‘내 고향 마산항’ ‘단장의 미아리 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두메산골’ ‘소양강 처녀’ ‘삼천포아가씨’ ‘산장의 여인’ ‘무너진 사랑 탑’ 등 그의 인생에 대한 희로애락이 전국에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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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순위 인기비결은 ‘베푸는 정’
그의 가수명은 진방남(秦芳男), 작사가명은 반야월(半夜月). 그의 인생은 다채롭다. 그의 즐거운 인생은 참으로 행복이 넘친다. ‘인생은 퍼주면 행복하다. 있는 데로 베풀고 싶다.’ 돌아가신 선배들은 물론 후배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의 비결 1순위는 ‘베푸는 정’이다. 그가 내뿜는 행복한 기운은 3차에 걸친 저녁시간 내내 우리 일행에게 듬뿍 건네주었다.
“내가 직접 작명한 이름만 해도 5개는 넘는다. 별 짓을 다해 봤다. 백구몽, 추미림, 진방남, 반야월, 박남포, 고향초. 백구몽은 배의 구멍이 아니라, 한자로는 ‘흰 갈매기의 꿈’이다. 반야월은 ‘반달’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쪼그라드는 보름달보다는, 앞으로 둥그렇게 될 ‘반달’이 더 좋게 생각되어 만든 가명이다. 나는 진방남과 반야월, 두 이름으로 쌍둥이처럼 살았다. 어떤 사람은 진방남을 만나 악수를 청하고, 어떤 분은 반야월에게 악수하고, 이름 두개를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참 반갑다. 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언젠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던 한 걸인이 나를 쳐다보더니, 반가움에 악수를 청했다. 그 손이 깨끗할 리 있겠는가? 나를 반갑게 대해주는 그 걸인이 나를 좋아하니, 나도 당연히 걸인을 좋아한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참 멋이다.”
그는 가요사랑 뿌리 찾기의 회장이다. “1932년 고가마사오에 의해 처음 발표된 일본의 엔카는 우리 가요를 도둑질하여 모방한 일본의 가요”라고 했다. 1928년에 발표된 대중가요 1호 ‘황성옛터’의 뒷이야기에 대한 우리 가요의 뿌리를 그는 증언한다.
“전통가요를 살려야 한다. 우리의 전통가요는 저항가요다. 우리 민족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우리의 가요 노랫말에 살아 있다. 서울에 살았던 고가마사오가 우리나라의 가야금 소리, 피리 소리, 장구 소리, 우리 가요를 도둑질해 간 놈이다. 1932년 일본 엔카의 효시는 1928년에 발표한 ‘황성옛터’를 모방한 것이다. 이예리나가 노래한 ‘황성옛터(전수린 작곡, 왕평 작사)’는 대중가요 제 1호이자 전통가요의 효시다. 100년 전인 1928년, 일제식민지 시절 16세의 이예리나는 ‘황성옛터’를 노래했다. 노래하는 가수나 객석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함께 울면서 합창했다. 이런 광경에 놀라서 일본 현병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허둥대다가 결국 무대의 전등을 소등시켰다. 노래를 한 가수나 악극단, 객석에 있는 동포들 모두 종로경찰서에 연행된 사건으로 우리의 저항의식은 시작되었다.”
식민시대 가요는 저항의 도구
일제 식민지 시절, 나라를 빼긴 설음은 고스란히 우리 가요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 저항의식으로 노래하였던 선구자들이 지금은 지하에 계시다. 혼자 남아 있는 그는 그 어르신네를 모시는 추모제를 해마다 지내고 있다. 서울 종로 낙원동에 위치 한 대각사에서 56명 가요계 선구자들의 합동 추모제를 올린다. 광복이 후 세상을 떠난 가수 현인과 박재홍을 추가한 선배들의 56분 영정들을 사진과 함께 모시고 있다
“노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 가요의 밑바닥에는 저항의식이 강하게 저려 있다. 저항가요에는 우리의 슬픈 역사가 들어있다. ‘타향살이’ ‘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랫말에 나오는 하나하나의 단어는 값싼 사랑 타령이 아니다. ‘그리운 내 님이여~’에서 ‘님’은 내 조국이다. 내 가사에는 혁명이 있고 일제의 총칼과 싸운 글이다. 그 노래를 불렀던 어르신들은 지하에 계시다. 지금은 나 혼자만이 남았다. 그 어르신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작가 작곡, 가수 1세대들 수모 받은 분, 56분은 떠나갔고, 한사람 나만 남았다. 이어령 문화부장관시절 나는 문화부장관 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보다 내가 후배들에게 받은 한국가요예술인 ‘국보 1호’가 내 ‘가보’다. 정부에서 주는 훈장보다 전체 예술인들이 준 이 훈장이 더 큰 의미가 있다. 이 ‘국보 1호’ 명패는 내가 받는 게 아니다. 대각사에 모셔져 있는 56분 영정 앞에 이 훈장을 바칠 것이다. 그 영혼들은 일제식민지 시절, 조국을 위해 저항가요를 부르다 끌려가서 고생을 하셨던 어르신들이다. 내가 대신 받아서 그 어르신들에게 바칠 것이다. 내 정신을 우리 후배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대대손손 후손들이 우리 가요를 부르며 우리의 뜻을 기억하길 바란다.”
최근에 그가 작사한 ‘나의 별’은 기네스북에 도전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예술인들이 제작한 노래이다. 그를 존경하는 한국가요작가협회 김병환 회장은 덧붙인다.
“어르신의 인간문화재 보호청장은 바로 나다. 역사를 지닌 어르신인 ‘국보 1호’ 문화재를 정부는 보호해주지 않는다.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아버지 같은 분이요, 신적인 존재인 ‘국보 1호’는 오래도록 계셔야 한다. 어르신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가요계는 무너진다. 어르신은 젊을 때부터 먹거리를 참으로 많이 주셨다. 저녁마다 우리 모두를 불러다 먹였다. 왜 사람들을 불러 먹이냐고 물으면, ‘차린 상에 젓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지.’ 이런 큰 선배는 한 사람도 없다. 인간적으로 큰 존재이면서 우리 역사의 뿌리이다. 이리 큰사람은 없다. 어르신은 125세까지 살아야 한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노래가 나온다. 작사가 반야월 93세, 작곡가 김병환 73세, 노래 김태곤 72세, 총 238세의 ‘나의 별’은 곧 발표될 예정이다. 아마 기네스북에 오를 것이다.(웃음)”
술맛 돋운 젊은시절 이야기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이야기는 술술 풀렸다. 술을 엄청 좋아하는 그는 술에 얽힌 노래의 사연들을 서슴없이 말한다. 우리네 된장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노랫말은 정을 담고 있는 그의 인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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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서너 번에 걸친 흥겨운 건배사는 식탁의 흥취를 진하게 했다. 그가 최근에 작사한 ‘나의 별’을 함께 한 김태곤(72세)이 노래를 불렀다. 반야월은 자신의 노랫말에 심취하여 눈을 감은 채 손으로 식탁을 멋스럽게 치면서 장단을 맞추었다. 노래하는 가수보다 한 발 앞서 노랫말을 계속 읊조리면서 흥을 더하였다. 93세인 그는 자신이 작곡한 모든 노랫말을 몽땅 기억하는 괴력(?)을 지녔다. 그의 멋스런 세레모니에 맞추어 김병환(73세) 작곡가 역시 두 손으로 박자를 힘차게 지휘했다. 노신사 3분(총 238세)의 노래와 흥취는 함께 자리한 식당에 있는 손님들의 술맛을 더해주었다. 흥에 취한 그는 젊은 시절 이야기로 술맛을 돋웠다.
“경상도, 전라도에 살던 여자들은 봉천지역 공창에 팔려갔다. 그 옛날에는 경상도와 전라도는 모질게도 못살았다. 여자의 몸값이 3원 50전이었다. 봉천에서 내 레코드는 많이 팔렸다. 나는 팬레터를 많이 받았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봉창의 한 창녀에게서 온 편지에 ‘서방님, 답장을 안 해주시면 저는 죽겠습니다.’하는 사연도 있었다. 신마치(?) 공창에서는 히빨이(일본어로 호객)를 했다. 지금 신마치 지역은 아마도 충무로 5가~6가 근처일 것이다. 그 곳에 가면 창녀들의 사진이 집 앞에 걸려 있었다.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콩을 던지며 호객을 했다. 콩을 맞아 쳐다보는 손님을 낚아채서 끌고 갔다. 신마치에 팔려 온 한 창녀의 사랑이야기를 해주겠다. 한 후배의 여자 친구가 주선하여 어쩌다가 그 창녀를 만났다. 그 창녀를 소개한 후배는 ‘형님 레코드를 많이 쌓아 놓아두고, 형님 좋아하는 술 2병도 준비했다. 살아 있을 때 형님 한 번만 보고 죽고 싶다고 애절히 원한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좀 들었던 시절이라 그냥 지나쳤다. 후배는 어느 날 처음부터 작정을 했는지, 후배와 나는 신세계 건너편 중앙우체국에서부터 술을 마시며 결국 충무로 5가까지 계속 몇 차에 걸쳐 술을 마셨다. 결국 신마치 공창까지 가게 되었다. 후배는 술이 왕창 취한 나에게 사정을 했다. 그 창녀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봐달라면서 원을 했다. 아무리 벽창호이라도 그 창녀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보자, 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공창의 방에 들어가 보니 레코드를 많이 사서 쌓아놓고, 술 2병위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큰 절을 하는데... 그런 창녀라도 다 사정이 있다. 자신이 타락의 길을 스스로 들어온 것은 아니다. 그 시절 부모와 어린 동생들 먹을거리 마련하느라 그리 된 것뿐이니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느냐?”
‘이 한을 풀어다오’ 음반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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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이미자는 ‘19 순정’을 불러 지금은 국민가수가 됐다. 가요계에서 이미자는 여왕이다. 이미자의 영광이 내 영광인 것 같다. 그 기쁨은 대단하다. 그런 기쁨을 가지고 작사를 한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자가 부른 ‘두형이를 돌려줘요‘ 그 시절에 대히트를 쳤다. 대한뉴스에 나오고 굉장했다. 결국 유괴된 두형이는 살해당했지만, 두형이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노랫말을 썼다. 내 가정사에서 가장 슬픈 노랫말도 있다. 슬픔도 여러 종류가 있겠으나, 제일 내 자신에 대한 슬픈 노랫말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다. 나는 가족을 이북에 두고 홀로 피란을 먼저 내려왔다. 내가 없는 사이 아내는 아이들을 혼자 키웠다. 그러니 5살짜리 딸내미가 영양실조에 걸려 죽었다. 아내는 죽은 딸내미를 울면서 혼자 땅을 파서 묻었다는 말을 들었다. 아내의 나의 뼈저린 슬픔에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노랫말을 썼다. 내 작품을 정리하다보면 내 정열에 내가 반한다. 히트 칠 것을 예상한 곡이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뒤판에 있는 곡이 대히트를 치는 경우도 있다. 만든 사람이 정확한 게 아니라 대중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가 가장 좋은 노래이다. ‘소양강 처녀’와 ‘아빠의 청춘’처럼.”
그의 노래 70년 세월은 여기 저기 이리 저리 부딪치는 사연을 그대로 담고 있다. 노래속의 그는 그 시점에서 부딪쳐 오는 과정을 읊고 있다. 그의 인생은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날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자신을 흥겹게 만들고 있다. 그는 나이를 잊고 산다. 멋진 그의 삶은 앞으로도 좋은 노랫말로 후배를 격려하며 우리의 뿌리를 든든히 지켜낼 것이다. 그가 지켜 낸 우리 가요는 영원히 노래할 것이다. 살아있는 ‘대중 가요계의 국보 1호’ 반야월은 영원히 우리의 가요역사에 남을 것이다.
“한강물이 흘러흘러 가다가 바위를 만나면 바위 사이로 비켜 지나가고, 고랑이 깊게 파여 있으면 그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와 흘러간다. 지금까지 한강물처럼 흐르는 물처럼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4가지를 읽는다. 밤 2시까지 작품에 몰두 한다. 나는 항상 머리 회전을 시키려고 노력한다. 나는 작품 하는 게 그리 좋다. 내 눈을 감기 전까지 노랫말을 쓸 것이다.”
출처:브레이크뉴스 김성애 논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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