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세상

문재인 대표의 생각에 대한 김한길의 생각

daum an 2015. 5. 20. 14:41

“뭉치면 살고 분열하면 죽습니다”

- 패권정치 청산으로 우리당의 통합을 추구하는 일은 「비노」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당 혁신의 출발이고 정권교체로 다가가는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적이 아닌 동지입니다.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타협해야 합니다.
우리당은 통합하고 단결해서 정권교체를 실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참패를 겪은 이후 얼마나 심란하십니까. 또 최고위원회에서의 「공갈 발언」과 「봄날 노래」로 얼마나 속상하셨습니까. 그런 다음에도 지도부가 반성과 성찰 속에 당을 수습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더 많이 실망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우리당은 선거에서 패배하고, 패배를 수습해가는 과정에서 또한번 패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패배의 상처가 더 깊다고도 합니다. 저 또한 직전 당대표를 지낸 사람으로서 당원 동지들께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선거참패 이후 고민이 깊던 중에, 문재인 대표께서 직접 쓰셨다는 <당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읽고 큰일이다 싶었습니다. 이 글은 지도부회의에서 채택을 거부하고 비공개를 결정했다지만, 다른 경로로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문 대표의 상황인식은 <분열은 공멸입니다>라는 제목과는 정반대로 편가르기와 갈라치기로 오히려 우리당의 상당수 동지들을 「타협할 수 없는 대상」으로 규정하는 「분열의 프레임」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란 때로 적과도 타협해야 하는 일일진대 하물며 같은당의 동지들과도 타협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걱정이 큽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당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당이 하나로 뭉쳐서 단결해야 합니다. 통합으로 가는 길의 맨 앞에 문 대표가 나서야 합니다.

지도부를 비판하며 흔드는 사람들은 사심에 찬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같이 갈 수 없다는 문 대표의 결연한 최후통첩 같은 글이 공개된 마당에, 제가 구차스럽게 사정하며 매달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좋습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간절한 심정으로 몇자 적습니다.

지난주 문 대표가 저를 저녁자리에 청해서 의견을 구하기에 이렇게 답을 드렸습니다. 문 대표가 꼭 사퇴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문 대표가 친노좌장으로 버티면서 끝까지 갈 것인지, 아니면 야권의 진정한 대표가 되기 위해 패권정치 청산을 결단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당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로 뭉쳐야 하고, 통합을 위해서는 문 대표가 스스로 「패권의 성」을 허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우리당에는 「친노(혹은 범친노)」라고 불리는 세력과 「친노가 아닌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소위 우리당의 대주주라고 불리던 여러 계파들이 이미 해체됐거나, 빠르게 해체돼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친노」와 「비노」가 계파로서 대결하는 구도가 실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친노」가 있기 때문에 그 나머지인 「친노가 아닌 사람들」이 있게 됐을 뿐입니다. 소위 「비노」라고 불리는 이들은 「친노」가 아니라는 게 유일한 공통점일 뿐, 하나의 조직이나 이해로 뭉쳐 있는 계파가 아닙니다. 이 점은 「비노」의 수장이라고 오해받기도 하는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비노」끼리 한번 모여보자는 말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비노」는 단결력이 모자라고 생각이나 행동이 제각각이라는 지적은 사실 정확한 지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위 「친노」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패권정치를 청산하기만 하면 우리당의 고질적인 계파주의가 극복될 것입니다. 그러면 공식적인 리더십에 의해 당이 일체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 대표께 패권정치 청산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당이 하나로 뭉쳐서 총선승리와 정권교체를 실현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당이 여당이 돼야 도탄에 빠진 민생을 제대로 챙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 대표의 진심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거참패 이후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기득권을 지키려는 과거정치 세력」이 「종북몰이식 정치공세」로 「공천지분을 요구」하고 있다고 규정하면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나만 옳다, 우리만 옳다」는 계파주의의 전형적인 독선과 자만심, 적개심과 공격성, 편가르기와 갈라치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도대체 당의 대표가 이렇게 「분열의 정치」, 「뺄셈의 정치」를 추구한다면 어떻게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굳이 우리당에서 기득권을 말한다면, 당권을 쥐고 있는 문 대표만한 기득권이 따로 없고, 친노 만큼의 계파기득권이 따로 있겠습니까. 정치 경험을 쌓은 과거정치는 무조건 나쁘고, 정치인답지 않은 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말하는 문 대표의 정치는 아무리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해도 새정치니까 무조건 좋은 정치라는 식의 주장은 논리가 아닌 억지이고,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구태정치가 비난받는다고 해서, 정치를 잘 모른다는 것이 결코 자랑일 수 없습니다.

저는 이십년 가까이 정치해오는 동안 늘 통합을 추구해왔습니다. 「덧셈의 정치」를 지향해왔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계파정치에 섞이지 않아서 한번도 「동교동」이나 「친노」가 아니었지만,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의 대통령을 만들어낸 대선에서 온몸을 던져 기여했던 것을 큰 보람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당의 대선 승리는 모두 「통합의 정치」의 승리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소위 DJP연합이라는 통합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라는 통합으로 승리했습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에 있은 가장 큰 선거는 전국선거인 2014 지방선거였습니다. 박근혜정부 출범 1년여 만에 있은 지방선거는 야당에게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안철수 새정치 세력의 등장으로 야권표가 분산될 경우 큰 패배가 예견되던 선거였습니다. 저는 민주당 대표로서 안철수 새정치와의 전격적인 통합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아무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전격적인 통합이었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결단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됐고, 그 결과 지방선거를 돌파해냈습니다. 「통합의 정치」, 「덧셈의 정치」의 승리였습니다.

패권정치 청산으로 우리당의 통합을 추구하는 일은 비노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당 혁신의 출발이고, 정권교체로 다가가는 첫걸음인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단기필마로 몸을 일으켜 「이길래야 이길 수 없다」던 싸움에서 기적같이 승리를 일구어내셨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저희들은 질래야 질 수 없고 져서도 안될 싸움에서조차 참담하게 패배했습니다.
 
2012년 대선패배 이후에 있은 고 노무현대통령 4주기 추모제의 추도사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2012 대선패배 역시 유력한 야권후보끼리 원만하게 통합하지 못했던 결과입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유세차 무대에 우리당 국회의원들을 오르지 못하게 한 패권적이고 배타적인 선거운동도 패인 중 하나였습니다. 또 이길 수 있었던 2012 총선에서 패배했던 원인 중의 하나로 계파공천 패권공천이 지적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4.29 선거참패 역시 서울(관악을)과 광주(서을)의 공천이 결과적으로는 계파공천이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대표의 자리는 듣기 거북한 말들도 부단히 경청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문 대표는 감정과 분노를 삭이고 작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봐양 합니다. 저는 문 대표와 저의 목표가 크게 보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정권교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당부터 하나로 통합해서 단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우리당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패권정치가 마감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문 대표 자신이 친노좌장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명실상부한 야권의 대표가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정치민주연합 울타리 속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정권교체라는 공동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동지들입니다. 우리 중의 일부가 듣기 싫고 아픈 지적들을 토해낸다고 해서, 가만히 듣고 있기에는 억울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다고 해서, 그들을 적으로 돌리고 「당신들과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대표의 직에 앉은 분으로서는 결코 말씀해서는 안되는 말씀입니다. 듣기에 불편한 여러 목소리까지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리더십의 요체입니다. 당대표는 그분들을 포함한 모든 당원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친노」든 「비노」든 크게는 모두가 우리편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저는 7.30 선거패배 다음날 아침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모든 책임을 안고 대표직에서 물러납니다」라고만 말씀했습니다. 당내 일부가 당권과 공천권을 탐해서 선거가 끝나기 전부터 저를 마구 흔들어댔기 때문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라고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에게 우리당을 마치 「탐욕의 집단」인 것처럼 내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 대표를 우리당의 대표로서, 유력한 대선주자로서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지난번 만남에서는 서로 상당히 솔직하게 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에 일부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문재인 대표는 친노의 좌장으로만 머물러 있기에는 아까운 분인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이라도 문 대표께서 패권정치 청산 의지를 천명하고, 「통합의 정치」 「덧셈의 정치」에 나서신다면 저 역시 말석에서나마 당의 통합을 위해 열심히 도와드릴 것입니다. 우리당의 모든 대립을 녹여내는 용광로 리더십, 자신의 이익부터 희생하는 리더십, 모든 당원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당을 걱정하는 당원 동지들과 함께, 문 대표의 결단을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