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댁·베트남댁…다국적 자원봉사단 떴다 | |||||||||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맞은 제주 다문화가정센터 식구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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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한 기자 /시사우리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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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쌀국수 세 그릇이요~.”
베트남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 입은 김지민(38) 씨 손놀림이 점점 빨라졌다. 이틀 전, 소녀처럼 수줍게 웃기만 하던 모습은 오간데 없다.
김 씨는 지난 29일 제주 월드컵경기장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기념해 개막한 ‘제주국제문화관광 엑스포’에서 아세안 국가 음식체험, 특별히 베트남 음식 홍보 자원봉사를 맡고 있다. 그녀는 사실 베트남 현지에서 식당 운영 경험까지 있는 베테랑 요리사다. 또 몇 해 전 한국인 남편 이상철(38) 씨를 만나 제주도로 시집온 ‘베트남댁’이기도 하다.
뜨거운 불 앞에서 연신 국수를 말아내던 김 씨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점심 인파가 한 차례 몰려나가고 나서야 “오늘 점심때만 300그릇 이상 나간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 그녀. 그제야 이틀 전 ‘제주 다문화가정센터’에서 만난 지민 씨로 돌아온 것 같다.
□ 축제 있는 곳 어디든 달려가 ‘자원봉사’
지민 씨를 처음 만난 건 27일 제주시 도남동에 위치한 ‘제주 다문화가정센터(이하 다문화센터)’에서였다. 생면부지의 땅으로 시집 온 결혼이민자들은 이곳을 ‘친정’이라 부른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한국어와 긴요한 생활정보와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곳. 그리고, 주변 시선과 정서 차이 때문에 외롭고 힘들 때마다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다문화센터 식구들은 제주 유채꽃 축제, 제주 돼지 축제 등 도내 잔치 자리에 빠지지 않고 달려가 ‘봉사활동’을 자처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려 국제결혼과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이웃들의 ‘터부’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다.
필리핀 출신 비수빈(34) 씨를 아내로 둔 손상돈(44) 다문화센터 기획이사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문화가정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고정관념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경제·문화적 여건 때문에) 상상 이상으로 힘들게 사는 결혼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제주국제문화관광 엑스포’ 자원봉사는 원래는 계획에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아세안 지역 정상들이 대거 참석하는 국제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행사니, 꼭 참석해주면 좋겠다’는 제주도청 의뢰를 받았다. 다들 ‘그러자’고 흔쾌히 동의했다. 오명찬(47) 다문화센터 대표가 “원래 우리가 이렇게 단합이 잘 된다”며 너스레를 떨자 다들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 5개국 다문화 음식…베트남 쌀국수 ‘인기 짱’
다문화센터 식구들은 엑스포에서 베트남, 필리핀, 태국, 중국, 일본 등 총 5개국 고유음식을 만들어 제공했다. 새우를 파프리카·청피망 등과 함께 토마토소스에 볶아내는 ‘감바스’, 당면과 닭 가슴살에 갖은 양념을 하는 ‘비혼’, 한국 빈대떡과 유사한 일본의 오꼬노미야끼, 중국식 물만두와 베트남 쌀국수 등이 주 메뉴다. ‘인기 짱’ 메뉴 1, 2위는 베트남 쌀국수와 오꼬노미야끼가 차지했다.
제주시 화북동에 사는 김대홍(50) 씨는 “오늘 베트남 쌀국수라는 걸 처음 먹어봤다. 고기가 들어가서 느끼할 줄 알았는데 구수하고 아주 맛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 한글·컴퓨터 등 프로그램 운영…아낌없이 섬기는 손길들
센터가 문을 열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처음 준비를 시작한 건 2007년 10월이고 실제 사무실 운영이 시작된 건 작년 1월부터다. 임대료 마련부터 사무실 페인트칠, 공사까지 센터 식구들이 직접 해결했다. 농사짓는 김지민·이상철 씨 부부는 자원봉사가 있을 때마다 각종 채소 등 음식재료를 ‘아낌없이’ 조달한다.
센터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건 오명찬 대표 부부다. 원래 자그마한 인쇄디자인 회사를 경영하던 오 씨는 다문화센터가 문을 열자 생업을 포기하고 센터 일에 매달렸다. 중국 출신 결혼이민자 아내 김정림(38) 씨도 마찬가지다. 작년 3월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서 어렵게 들어간 제주국립박물관 중국·일본어 통역 담당직을 ‘고생하는 센터 식구들이 눈에 밟혀’ 그만두고 말았다.
다른 센터 식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살기 팍팍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나눈다. 이 공동체를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 가족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서다.
제주 다문화가정센터는 현재 한글 기초·중급반을 비롯해 컴퓨터반, 사진 강좌, 비즈공예, 데코비누 만들기 등 결혼이민자들의 언어 및 직업 교육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결혼이민자 대상 지원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 교육을 제대로 익히게 될 때까지 ‘확실히’ ‘무료로’ 책임진다는 것.
오 대표는 “한국어 능력시험에 붙을 때까지, 컴퓨터 자격증을 딸 때까지 꾸준히 교육하고 지원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 한·아세안 만남, ‘다름’ 이해하는 ‘창문’ 됐으면
제주 다문화가정센터가 추산하고 있는 제주 내 다문화 가정은 약 1600 가구. 이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진심으로 이해받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여전히 ‘다문화’라는 말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니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설명해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다.
물론 긍정적 변화들도 보인다. 김보수(44) 씨는 “한국인 가족과 결혼이민자 당사자간 ‘신뢰’가 회복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꼽았다. 김 씨는 “이웃들이 ‘(다문화가정 사람들) 겪어 보니 참 착하네, 잘 하네, 우리랑 똑같네’ 라는 반응을 보일 때 기쁘다”라고 덧붙였다.
임신 4개월 된 아내 까오뚜엇안(27, 베트남) 씨와 함께 인터뷰에 나온 배철민(44) 씨는 “아내가 작년 12월에 결혼해 한국에 왔기 때문에 아직 모든 게 서툰데 뭐든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면서 “태어나서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는데 아내 덕분에 베트남에도 가보고 다른 나라 풍습, 언어를 익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창문’이 되는 것, 다문화 가정에 대한 국민 차원의 이해도를 높이고 서로 화합하는 계기가 되는 것. 다문화센터 식구들의 한결 같은 바람이었다. ◆ ‘사랑해요, 아세안!’…다채로운 다문화 축제 만개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면적, 인구, 민족, 종교, 정부형태 등에서 저마다의 색채를 갖고 있는 아세안은 이런 ‘차이’를 상호협력과 공존의 밑거름으로 삼으며 저력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이런 아세안의 문화적 특성을 기념하기 위해 5월24일~6월2일을 ‘아세안 주간(ASAEAN WEEK)’으로 설정, 다채로운 문화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는 31일 오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아세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제안해 1년여의 준비 끝에 창단한 전통음악 오케스트라는 한국과 아세안 10개국의 다채로운 전통악기로 공연하는 독특한 연주단체.
이번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52종 79개 전통악기로 ‘쾌지나칭칭’을 연주하고 아세안 각 나라의 민요 가락을 바탕으로 한 창작곡들도 선보인다. 특히 11개국 언어로 만들어진 박범훈 작곡 ‘사랑해요, 아세안’은 공연 대미를 장식하며 큰 여운을 남길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화부는 또 아세안 문화예술인과 아세안 출신 다문화가정 10가구(40명)를 초청해 시낭송회, 영화상영회 등의 행사를 갖는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특히 아세안 지역 시인, 영화감독 등과 만나 우정을 나누고 상호 교류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 밖에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선 ‘제주국제문화관광 엑스포’가 열려 국내외 관광 여행정보와 여행상품, 각 국가별 풍물과 음식 홍보·체험의 장이 펼쳐지고, 제주 칠성로 거리 일대에서는 토크쇼 ‘이주민들의 수다’, 독립영화제, 이주민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제주 다민족문화제’가 열려 흥을 돋우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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