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세상

동방정책 성공했듯 햇볕정책 성공할 차례

daum an 2009. 5. 21. 20:47

동방정책 성공했듯 햇볕정책 성공할 차례
<김대중 특강>빌리 브란트와 나, 동방정책과 햇볕정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1일 한국외국어대 법학관 조명덕 홀에서 열린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인식, 그리고 평화와 민주주의 번영을 위한 국제학술회의”에서 “빌리 브란트와 나, ‘동방정책’과 ‘햇볕정책’”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강연을 통해 “현 정부가 출범한 이래 남북관계는 급속히 경색되고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큰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하고 “남과 북 모두가 대결하고 다투면 서로 손해를 보고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화해 협력하면 모두 안정과 번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강연의 요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강연문 <요약>
 
빌리 브란트 수상은 20세기 우리 시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분이었다. 인류 역사에 대한 심오한 철학,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용감한 투쟁, 적대관계에 있는 동족과의 화해, 대담한 정책적 결단과 뛰어난 실천력, 그리고 따뜻한 인류애와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이러한 위대한 인물을 갖게 된 것을 단순히 그 조국인 독일만의 영광이 아니라 전세계의 행운이자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빌리 브란트 수상과 나는 서로 진심으로 존경하고 이해하는 친구였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독재와 싸웠고, 공산주의와 싸웠고, 분단과 싸웠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신봉과 정의에 대한 열정에 있어서 서로 같았다. 무엇보다도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위한 신념과 열정을 함께하는 가운데 서로의 신뢰와 우정은 깊어갔다.
 

 

 

▲ 김대중 전(前) 대통령.

나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미국을 방문하여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빌리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지지하고 공감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의 ‘햇볕정책’을 주장했다. 그 당시는 냉전이 극심했던 때로 저의 ‘햇볕정책’은 군사정권에 의해 용공으로 몰려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브란트, DJ노벨상 후보추천
 
1980년 내가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빌리 브란트 수상은 한국의 군사정권 지도자 전두환 장군에게 친서를 보내서 강력히 항의하고 사형선고 취소를 요구했다.
1983년 내가 미국에 망명중일 때 빌리 브란트 전수상은 저를 독일로 초청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여권발급 거부로 저의 독일방문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87년 브란트 수상과 전체 사민당 의원들은 저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 주었다. 1989년 10월 26일 나는 브란트 수상을 한국에 초청하여 만찬연을 베풀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이 만찬장에 전해졌다. 브란트 수상께서는 예상 외의 빠른 사태에 당혹해 하면서 바로 귀국 길에 올랐다.
 
1991년 10월 나는 독일을 방문하여 빌리 브란트 수상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우리는 세계의 현실에 대한 의견과 미래에 대한 전망 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 통일로부터 한국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집중했다. 빌리 브란트 수상은 저에게 ‘우리는 동독으로부터 일어난 불의의 사태로 인해서 조속한 흡수통일을 했지만 한국은 반드시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추진하시오’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독일은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마음의 장벽은 무너지지 않았다’며 엄청난 후유증에 대해서 말했다.
 
1992년 10월 브란트 수상이 서거했을 때 나는 아내와 자식을 독일에 보내 장례식에 참석하게 했다. 당시 저도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14대 대통령 선거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1993년 2월 내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브란트 수상의 묘소를 참배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제 생애에 두터운 우정을 나누었던 위대한 친구를 회상하며 명복을 빌었다. 지금도 간혹 브란트 수상을 생각하면 그리운 심정이 사무친다.
 
‘동방정책’과 ‘햇볕정책’은 그 철학이나 정책, 실천방법에 있어서 상통하는 점이 많다. 첫째, 두 정책 모두 민족의 영원한 분단을 거부하고 반드시 통일을 이룩하자, 그 통일은 무력이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화적이고 단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브란트 수상은 오랜 ‘할슈타인 원칙’을 폐지하고 동독과의 교류 협력에 주력하는 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서독은 20년 동안 매년 평균 32억불씩, 총 600억불의 거액을 동독에 지원하고, 동서독간의 교류를 왕성하게 했다. 그리하여 동독인의 민심이 크게 동요했다. 그 동안 공산독재 치하에서 동독은 낙원이요, 서독은 지옥이라는 식으로 세뇌를 받아온 그들은 서독의 지원과 활발해진 동서독 간의 왕래를 통해서 서독이야 말로 낙원이요, 동독은 지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동독 내부에서의 민심의 동요와 폭발이 일어나게 하여 동독인이 자진해서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 을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한국에서도 규모와 기간은 짧지만 ‘햇볕정책’을 통해서 독일의 ‘동방정책’과 유사한 정책을 추진해서 짧은 기간 내에 북한의 민심과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햇볕정책’은 태양이 동서남북 고르게 따뜻한 햇볕을 보내듯이 남북한 양쪽도 냉전의 강풍을 잠재우고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공동승리의 성과를 발전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남북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민족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해결할 것과 통일은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을 합의했다. 그리고 남북 간 교류 협력을 모든 분야에서 왕성히 할 것을 합의했다. 내가 2000년에 북한을 방문해서 남북정상회담을 한 이래 남한은 북한에 식량, 비료, 의약품 등 매년 1억 5천만불 정도를 지원해 주었다. 이러한 우리의 지원은 그동안 남쪽에 대한 악의적인 선전만 들어온 북한 사람들을 동요시켰다. ‘남쪽이 잘 살지 않느냐. 우리에 대해서 동포애를 갖고 있지 않느냐. 우리도 남쪽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다. 통일이 빨리 되면 좋겠다.’ 이러한 심정을 갖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문화적 변화까지 가져왔다. 북한에서 남한의 대중가요를 부르고, 남한의 TV 드라마, 영화 등을 비공식적으로 보는 사태가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마치 서독이 ‘동방정책’을 통해서 동독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왔듯이, 우리도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의 변화와 우정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경제협력과 문화 체육 교류 등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은 긴장완화 속에 평화를 누렸고, 한반도의 냉전시대는 영원히 끝나는 것 같이 보였다.
 
남북의 공동번영 이룩
 
현 정부가 출범한 이래 남북관계는 급속히 경색되고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큰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믿는다. 남과 북 모두가 대결하고 다투면 서로 손해를 보고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화해 협력하면 모두 안정과 번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지난 2000년도 이래 이룩된 남북 간의 화해 협력의 시대를 다시 회복하고자 강력히 바라고 있다.
 
나는 ‘동방정책’이 동서독간의 평화와 우호 협력을 증진시켜 마침내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게 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햇볕정책’이 다시 힘을 얻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공동번영이 이룩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남북 7천만 민족이 다 함께 열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말씀으로 독일과 한국은 얼마나 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왔고, ‘동방정책’과 ‘햇볕정책’은 얼마나 큰 상통점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동방정책’은 한발 앞서 성공했다. 이제는 ‘햇볕정책’이 성공할 차례이다. 먼저 성공한 독일은 우리의 ‘햇볕정책’이 성공하도록 많은 지원을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도 다시는 민족이 피를 흘리고 싸우거나 적개심 속에서 증오하고 대결하는 시대가 와서는 안 된다는 자각 속에 우리의 유일한 대안이자 성공한 ‘동방정책’과도 상통하는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해 주기 바란다. 빌리 브란트 수상을 다시 한 번 다 같이 추모하면서 한독 양국이 더 한 층의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시킬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외국어대 국제학술회의 질의응답
 
-외대 학생 : 중국 시진핑 주석과 빌클린턴 대통령을 만나신 것으로 안다. 혹시 북한 관련 대화도 나누셨는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궁금하다.

▲여기와서 축사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연설은 읽으면 되지만 질의응답은 어렵다. 오늘도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왕 왔으니 성의껏 답변 하겠다.(청중 웃음)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중국 시진핑 국가 부주석과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북한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우리는 북한이 인방(가까운 이웃 국가)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도운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금 초조해 한다. 미국(새 정부)에서 반가운 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나오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이) 당신이 미국에 잘 얘기해서 빨리 희망적인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은 남북한을 똑같이 중시한다고 되풀이해 말했다. 그리고 일본이 6자회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중국은 6자회담이 시간은 걸리지만 반드시 성공하고,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요새 미국 친구들과 자주 연락이 돼서 보즈워스 특별대표, 클린턴 대통령과 만났다. 클린턴과는 재임시 손잡고 일했던 사이이고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다. 그는 자신(클린턴)과 제(김대중)가 했던 대로 참고해서 일하라고 힐러리 장관과 오바마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클린턴은 제네바 협상을 통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2000년) 평양 다녀온 후 올브라이트와 조명록이 교차 방문하면서 당시 문제였던 미사일 문제에 - 당시 핵은 해결이 되었다 - 완전 합의는 아니어도 사정거리 500Km 이상은 안 하기로 합의됐다.

그러나 클린턴의 임기가 끝나고 부시 대통령이 들어와서 모든 것을 뒤집었다. ABC, 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취했다. 여기에 북한이 반발해서 NPT를 탈퇴하고, IAEA 요원도 추방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이 제일 바라는 것은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국제사회 진출이다. 그것만 되면 북한은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핵 포기는 제네바협정에서뿐만 아니라 2005년 9.19 성명을 통해서도 ‘북한은 핵을 포기한다. 미국은 북한과의 국교를 정상화한다. (북한에) 경제원조를 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협정을 맺는다’ 등에 합의가 돼있다.

중국 가서도 얘기하고 클린턴 대통령에게도 얘기했는데 그것(9.19성명)만 실천하면 된다. 그런데 북한이 그 실천을 의심하고 있다. 우리 쪽은 북한이 너무 심하게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외교는 인내심과 상호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미국도 그런 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대 이선우 교수 : 대통령 임기 동안, 그리고 그 전후로 김 대통령은 통일정책 등 여러 면에서 성공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은 핵에 굉장히 의존한다. 븍이 핵보유국이라는 보도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통일 과정에 어떤 영향을 가질 것인가, 혹 영구분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의 통일은 언제 되는가? 

▲세상을 볼 때 한편으로는 망원경을 가지고 저 멀리 넓게 보고, 한편으로는 현미경으로 좁고 깊게 봐야한다. 망원경으로 멀리 넓게 보면 북한 핵문제는 해결된다. 중국도 (북한 핵은) 절대 용납 안한다. 미국도 그렇다. 북한도 근본 목적은 핵 보유가 아니다. 자신의 안정과 경제적 활로만 열어주면 핵은 안 가져도 좋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미 제네바 협정에서 핵을 포기했다. 그 대가로 경수로 지어주고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했는데, 부시 정부 들어와서 모두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6자회담 만들어서 협상한 결과 9.19선언이 합의됐다. 즉, 북한은 핵을 포기한다, 미국은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한다, 6자 협력하에 한반도 평화협정을 맺는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경제지원한다고 합의했다. 중요한 것은 핵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6자회담은 해산하지 않고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를 만들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 핵문제를 해결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기구를 만들게 되면 관계국들이 모두 득을 보고, 깨지면 모두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다.

부시 정권과 달리 오바마 대통령은 ‘나의 대북정책은 부시 정책이 아니라 클린턴의 정책을 중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이 국무장관 아닌가? 그런데 미국은 동북아 담당 정책 스탭이 완성되지 않아 정책 스터디가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이 급한 것이다. 내가 이번에 중국과 미국 지도자를 만나보니, (6자회담은) 깨진 것이 아니고, 깨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북핵문제는 해결 안됐지만 북한을 살도록 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북한에 대해 성급하기보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월요일 저녁 클린턴 대통령과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돌아가면 클린턴 국무장관과 오바마 대통령께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KBS 김기현 기자 : 연설 중에 “남북 경색 국면이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는다”고 하셨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지?

▲그 근거는 북한도 미국을 비난하기는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제1의 목표로 하고 있고, 미국도 북한을 과거처럼 ‘악의 축’으로 보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생존권을 보장하겠다, 국교도 하겠다, 핵만 포기하라는 입장이다. 북한도 생존이 보장되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원칙이 이미 합의돼 있다. 이미 북한은 제네바 협정과 9.19 선언에서 핵 포기에 합의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오바마 정권이 자리를 제대로 잡으면 금년 가을부터는 북한과 본격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KBS 김기현 기자: 하지만 남북관계 경색을 볼 때,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정책, 그리고 개성 등 북한에서 취하는 대남 정책이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제일 큰 흐름은 한국, 일본,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과 미국이다. 중국과 미국은 말씀 드렸다시피 북한이 핵을 포기만 하면 살게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살게만 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6자회담에서 9.19선언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북미간 국교 정상화하고 경제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데에 한국도 사인해 놓고 이제와서 안하겠다고 할 수 없지 않겠나? 나는 일본이 무리를 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은 6자회담에서 사인해놓고, 납치문제 해결 안 되면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6자회담에서) 배당된 20만톤(중유)를 안주면서 북한에 대해 압박만 가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 지도자들도 상당히 불만인 것으로 안다.

-Bernd Rother 빌리브란트재단 부대표: 동방정책과 지속적인 평화회의 체제가 지나고 보니 유럽 통합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이 지역의 중요 국가들, 즉 미국 중국 등이 참여하는 안정과 안보회의 구조가 이 지역의 장기적인 평화와 안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시는가?

▲6자회담 합의 사항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면 6자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기구를 창설한다고 되어 있다. 나는 6회담이 동북아의 안정을 위한 체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중국, 일본, 미국 누구도 동북아의 긴장고조를 원하지 않는다. 또한 그 누구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북핵문제는) 어렵다면 어렵지만 사실 쉬운 문제일 수 있다. 나는 1994년 미국 내쇼날프레스클럽(NPC) 연설 때부터 얘기해왔다. “한꺼번에 모개흥정하라. 줄 것 주고받을 것 받아라. 공동 승리 하시오. 그래야 해결된다.” 이렇게 주장해왔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북한에 대해 경제력에서도 우월하고, 핵을 빼면 군사력도 자신이 있다. 북한 군사력은 노후화돼 있다. 북한은 지금 초조하다. 미국과의 관계도 그렇다. 초조한 나머지 북한은 이왕 죽을 바에는 할 것 다하고 죽자는 심정이다. ‘너죽고 나죽자’는 심정이다. 북한이 우리가 볼 때는 못된 짓을 많이 한다. 클린턴 대통령도 말했지만 강자는 약자의 입장을 생각하는 도량을 가져야 한다. 나는 그런 입장에서 북한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 지도자들이 북한과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인정과 실천문제)을 해결해야 한다. 북한은 그것을 수용 안하고 실천 안하면 남쪽과 대화 안 하겠다고 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우리가 풀 것은 풀어야 한다. 금강산관광을 재개해야 한다. 총격사건 이후 북한과의 협상 과정을 끝내지도 않고, 사과해라, 공동 조사해라 말만 하고 관광을 중단시켜버렸다. 그런 점에서 다시 관광을 풀겠다 제안하고 북한이 안 받겠다 하면 어쩔 수 없다. 개성도 35만명이 일하는 대공단을 만들기로 합의했는데 지금 불과 4만 여명이다. 제일 큰 이유는 기숙사가 없다는 것이다. 개성 사람은 다 고용됐고, 멀리 함경도나 평안도에서 와야 하는데 그들이 잘 데가 없다. 이 사람들 재울 기숙사를 우리 정부가 짓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키지 않아 공단이 크질 못한다. 우리가 책임질 문제는 우리가 풀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렇게 가면 누가 봐도 우리가 잘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받으면 좋고, 안 받으면 우리의 선의는 인정을 받을 것이고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다.

결국은 이명박 대통령도 6자회담을 성공시키고 남북관계를 화해로 이끄는 그 길을 벗어날 수 없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동방정책만이 성공했듯이, 햇볕정책만이 한반도의 성공의 길이다. 햇볕을 다 같이 받자. 너도 이기도 나도 이기자는 공동승리의 정책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출처:브레이크뉴스 문일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