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세상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과 ‘던킨도너츠’

daum an 2009. 4. 29. 12:09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과 ‘던킨도너츠’
[문화칼럼] 유승호 교수(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광화문을 거닐다 수문장교대식 행사를 보았다. 아마 해외여행객에게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 중 가장 재밌는 행사 중 하나일 듯하다. 조선시대 왕궁을 지키는 수문장들의 행사이니 영국 버킹검궁의 근위병교대식처럼 한국 전통 권위의 상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사임에 분명하다.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 그리고 더러 구미 쪽에서 온 관광객들 수십명이 모여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행사는 괜찮았다. 심장박동에 맞춰 둥둥 두드리는 북소리와 익숙하고 기교 있는 북치기가 서로 잘 어울렸고 고풍의 대한문 앞에서 의관을 차려입은 ‘공익요원’들이 줄과 열을 맞춰 걷는 모습도 봄날의 광화문과 잘 어울렸다. 비록 짧은 교대행사였지만 우리도 이런 역사적 행사를 갖고 있다는 것에 뿌듯했다. 그런데, 삼각을 축으로 관광객의 시선을 모으는 작은 광장의 그곳에, 그 거대한 한 축을 생뚱맞게도 던킨도너츠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던킨도너츠는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잘 있는 던킨도너츠 옆에 수문장 교대식 행사가 시작된 것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DUNKIN DONUT' 간판과 건물을 보자마자 바로 관광객들의 눈치를 살폈을까. 던킨도너츠 브랜드로고를 색감과 디자인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써 놓은 모습일 뿐인데.

이미지통일이니 한국의 전통을 보여주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기 이전에, 짧은 교대식이지만 한국의 전통을 보여주는 일에 관광객들을 몰입시킬 요량이라면 적어도 최소한의 몰입을 느끼는 장치들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나에게 영어로 쓰인 던킨도너츠는 과거 수백년전의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을 느끼고 싶어 하는, 그리고 그 시절의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비해 너무나 강력한 방해자(distractor)로 비춰졌다.

몰입의 첫 번째 단계는 방해자(distractor)를 제거하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이미 ‘마음이 풀어진’ 준비된 몰입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 세계의 축제와 행사들이 관광객을 몰입시키려 애쓴다. 모든 것이 준비된 테마파크도 갑작스런 ‘거짓말’의 세계에 사람들을 몰입시키기 위해 ‘프리뷰스테이지(preview stage)’를 만들어 몰입을 유도한다. 디즈니 테마파크에서 인형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자신의 행사의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거나 동료직원과 담소를 나누게 되면, 당장 해고다. 관광객들이 즐기고 보았던 ‘가짜’의 세계가 진짜로 가짜였음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프로레슬링 인기가 사라진 이유도 사람들이 그 프로레슬링이 가짜였음을 모두가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니던가. 프로레슬링이 쇼인 것은 맞다. 그게 진짜라면 숱한 프로레슬링선수들이 병상에서 일생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프로레슬링 인기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음은 그 프로레슬링이 진짜임을 믿고 행동하는 마크(mark)집단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레슬러는 TV오락쇼에 나가서도 링에서 악인이었다면 악인이듯이 행동해야 한다. 착한 사람으로 보였다간 큰일이다. 사실은 이렇게 세밀하게 디테일을 챙겨야 사람들의 몰입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그 가짜의 세계가 진짜의 세계인 것처럼 쉽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몰입의 상태이다. 비록 가짜이나 이것이 가짜가 아닌 진짜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행동하고 보여주면 관객들은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다. 우리 수문장 교대식은 아주 숙련된 연출과 열심히 하는 ‘배우’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 배경은 받혀주지 않는다. 사실 수문장교대식이 그리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방해자만 없다면 관광객은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관광객들의 ‘준비된 마음가짐’에 조금 덧붙여 던킨도너츠 간판이 영어가 아닌 한글로 그리고 색깔만이라도 대한문의 단청과 닮은 청아한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정부도 일개 개인도 사실 사기업의 권리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야 없지만 한국에 있는 기업으로서 한국적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알린다는 의미에서 그런 센스가 돋보였으면 하는 생각이다. 맥도널드 간판색인 노란색이 파리에서는 흰색으로, 교토에서는 갈색으로 그 도시가 규정한 색상으로 바뀌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대한문 앞의 던킨도너츠가 멋진 수문장 행사와 어울리는 건물과 간판모습으로 바뀐다면,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이어져 대한문과 바로 통하는 시청역앞 지하철2번 출구와 장애인 엘리베이터들의 디자인도 ‘어울림 디자인’으로 바뀐다면,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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