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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마약수사관들 24시

daum an 2009. 4. 6. 10:43

서울중앙지검 마약수사관들 24시
마약과의 전쟁 선봉…생명 위협받고 밤샘 수사 예사

 

이성근기자

 

▲ 기사출처:위클리공감/서울중앙지검 마약수사관들.

우리나라에서 1년에 검거되는 1만여 명의 마약사범 중에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상당수라고 한다.
개인의 인생을 망칠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까지 좀먹는 ‘악의 뿌리’인 마약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마약수사과를 찾았다.

‘음침한 부둣가에 둥둥 떠 있는 어선 위에서 마약조직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때 검찰이 들이닥쳐 이들을 에워싼 후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한 기세로 일제히 총부리를 겨눈다. 잠시 배 위에서 실랑이가 벌어지지만 결국 조직원들은 힘없이 무너지고 깡그리 붙잡힌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MBC TV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 등장했던 마약 밀매조직의 검거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비현실적인 설정이라는 게 검찰수사관의 전언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하 서울중앙지검)에서 15년 동안 마약수사를 전담해온 도춘성 수사관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종종 극적인 재미를 더하기 위해 대규모 마약조직을 총기 난사 끝에 검거하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곤 하는데 마약 밀매가 극심한 브라질이나 이란의 국경지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주일씩 잠복근무할 때도 많아요

“마약 수사에는 주로 전기충격 총을 휴대합니다. 특별한 작전을 수행할 때를 제외하곤 실탄이 장착된 총기를 동원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마약사범이나 조직을 쫓다 보면 상대방이 흉기로 위협해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나흘에서 일주일씩 잠복근무를 할 때도 많고요.”

우리나라에서 1년에 검거되는 마약사범은 대략 1만명 정도. 비록 잡히진 않았지만 사회의 음지 어딘가에서 상습적으로 마약을 흡입하는 잠재 인구는 여기에 10을 곱한 10만명으로 추산된다. 놀라운 점은 검거되는 마약사범 중 상당수가 평범한 주부나 직장인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이 처음엔 호기심으로 마약을 투여합니다. 마약 유통업자들은 이를 빌미로 마약을 계속 구입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계속 투여하게 만들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약에 빠져 직장생활은 물론 가정까지 엉망이 되고 말아요.”

사실 국내에서 마약사범을 잡아들이는 일은 주로 경찰이 맡는다. 검찰수사관들은 마약을 공급하는 국제 마약범죄조직과 밀조·밀수조직 등 진원지를 뿌리 뽑는 것이 주 업무다. 하지만 마약조직은 은밀히 활동하는 데다 갈수록 공급 경로가 다양해져 수사와 검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요즘은 공항과 항만에 마약수사관을 집중 배치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마약류를 소지하고 밀수입하는 고전적 수법은 거의 사라졌어요. 대신 ‘햇반’이나 화물에 숨기거나 가구류의 나무속에 감추는 경우도 있고, 최근엔 인터넷을 이용해 국제특급우편(EMS)으로 필로폰이나 대마 등을 밀수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중국, 미국, 캐나다 등지의 재외교포와 공모해 서류봉투나 땅콩버터 같은 음식물에 필로폰이나 대마를 소규모로 은닉 포장해서 보내죠.”

마약조직 갈수록 지능화…인력 충원 절실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들에 의한 마약 공급도 확산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은 23만여 명이고,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89만여 명인데 이 가운데 마약류 밀거래 및 투약 관련 외국인은 약 1만명 정도라고 한다.

내국인과 국제 마약공급조직이 연계한 사례도 늘고 있다. 도춘성 수사관이 10년을 공들여 잡은 국제 마약범죄조직의 두목 프랭크 역시 내국인과 공모해 코카인을 밀거래했다. 프랭크는 지난 1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마약류불법거래방지에관한특례법 위반으로 무기징역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해외 마약사범에게 형을 집행하고, 해외로 인도한 첫 번째 사례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도 수사관은 “프랭크는 나이지리아인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 남미 등지로 수회에 걸쳐 마약을 밀거래했다”며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그에게 이용당했다”고 밝혔다.

“프랭크에게 이용당해 국제적으로 마약을 운반한 피해자들을 보고 놀랐어요. 평범한 대학생이나 가정주부 등이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용돈이 궁해 범죄에 가담했더군요. 특히 프랭크 등 조직원들이 일부 여성 운반책들에게 성폭행을 가해 가족 전체가 불행해진 경우도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마약수사가 본격화된 것은 1995년부터다. 당시 마약검사 기계를 들여와 정밀한 수사가 가능해졌다. 마약 흡입 여부를 가리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소변검사와 모발검사다. 소변은 4~10일 전, 모발은 1년 전 투약 사실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약 수사는 100%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보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약 관련 제보를 할 경우 보상금을 주거나 형을 감량해주는 플리바기닝(자백감형제도·Plea-bargaining)이 허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수사관들은 업무와 연관성이 깊은 세관, 국가정보원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며 정보를 수집한다.

“어떤 이들은 보상금을 받으려고 허위제보를 하기도 해요. 허위제보자 중에는 마약중독자인 남편이 강제로 투약해 가상을 실제상황으로 믿고 알려준 여성도 있었어요. 그 여성에게는 남편이 억지로 마약을 투약한 것이라서 죄를 묻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 여성처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투약한 경우엔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하고, 마약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운영하는 치료시설로 보낸다.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은밀한 장소에서 마약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갈수록 수법이 지능적이다 보니 애로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점조직으로 된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기엔 수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인력 충원이 시급합니다. 그래야 장기간 내사와 잠복근무로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는 후배들이 장가갈 것 아니겠어요?(웃음)”

도춘성 수사관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90%가 필로폰이며, 마약 투여자 대부분이 호기심에서 시작한다”고 귀띔한다. 또 “일부는 환각상태에서 성관계를 즐기려고 엑스터시를 복용한다”고 전했다. 그는 “마약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가정파괴범이며, 환각물질 흡입 경험이 있는 비행청소년은 마약사범으로 발전할 소지가 높으므로 청소년기부터 성교육처럼 환각물질과 마약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