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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5년과 DJ-호남과의 관계추적

daum an 2008. 11. 18. 00:25

노무현 정권 5년과 DJ-호남과의 관계추적
DJ진영과 호남은 왜, 노무현을 배반자라 낙인찍었나?

 

제휴=브레이크뉴스 문일석 기자

 

2002년 대선 당시 김대중(DJ) 진영과 호남은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 절대적인 공신역할을 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이후 김대중-호남 진영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었다. DJ와 호남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김대중 정부를 이어 재집권했다는 대국적 명분은 얻었지만 마음이 편하진 못했다. 그 이유는 노무현은 집권하자마자 자신이 집권했던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이어 대북특검을 수용, 김대중과 그 세력을 곤혹스럽게 했다. 측근인 박지원-권노갑 등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어 수감생활을 해야했다. 그가 호남민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함으로써 “가깝고도 먼 당신” 관계로 변질됐다. 노무현 정권 5년, 그리고 그 후와 DJ-호남과의 관계를 집중 조명해본다.

▲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브레이크뉴스
2002년 3월16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광주경선에서 광주는 노무현을 일등으로 뽑았다. 이 사건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광주혁명으로 불리었다. 당시 민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는 한화갑, 이인제, 노무현 등 3명이었다. 한화갑은 제주경선에서 1위가 되어 전남출신인 자신이 광주경선에서 승리할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또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이인제도 재집권을 위해 자신이 광주경선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개표결과 의외로 노무현이 1위로 승리했다.

DJ재집권 위해 영남후보 옹립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경선에서의 중립을 천명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친 김대중-동교동 조직이 노무현을 민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내부적으로는 조직을 풀가동, 노무현이 광주 경선에서 1위를 할 수 있도록 도운 것.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경선으로 당선됐지만, 내면적으로는 노무현이 김대중의 후계자로 점지됐다는 것을 시사한 것. 특히 한화갑은 동교동 출신으로 김대중의 가신(家臣)으로 분류되어온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광주 경선에서 낙방했다. 이때 후보를 사퇴, 결과적으로는 노무현 흥행을 도왔다. 김대중은 직접 노무현을 후계자를 점지하지는 않았으나 그 과정을 보면 노무현을 자신의 후계자(?)로 밀어주었음이 결과적으로 노출됐다. 그 이유는 호남표 만으로는 당선이 어려워 영남출신인 노무현을 후보로 내세워 영남표를 공략, 대선에 승리하기 위한 집권전략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광대 사학과 이주천 교수는 “노무현은 왜,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라는 글에서 “김대중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자신의 대북유화, 햇볕정책의 계승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점이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퍼주기식’ 유화정책이라든가, 북한 인권을 외면한 공산독재의 수명을 연장하는 이적(利敵)행위를 하는 어리석은 정책이라는 국내외의 따가운 여론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자신처럼 외골수적 신념으로 햇볕정책을 충실히 계승할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도 김대중은 민주당 내에서 여러 정치인들을 비밀리에 인터뷰하여 의향을 타진하고 성분조사에 착수한 바, 햇볕정책의 발전적 계승을 약속하겠다는 노무현의 다짐을 받아내었을 것으로 짐작 된다”고 전제하고 “가장 당선 가능성이 많은 인물이어야 했다. 그러자면 서울을 제외하고 유권자가 가장 많은 경상도에서 일정한 표를 확보해야 한다. 서울과 충청권의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를 잠식시키기 위해서는 경상도 선거구민의 지역감정을 이용해야 한다는 정략적 선택이었다. 지난번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등 3파전 선거에서 경상도에서 이인제 지지표가 상대적으로 이회창의 지지표를 잠식함으로써 김대중의 당선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한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지역감정의 단 맛을 향유한 집권당 민주당은 어떻게 해서든지, 경상도 표를 잠식해야 했다. 그것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경상도 출신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노무현 이외에 다른 마땅한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노무현의 최고 학벌이 부산상고 졸업이라는 것이 김대중의 목포상고 졸업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하여 평생 동안 학벌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온 김대중으로서는 자존심을 만족시킬 수 있다. 자신의 후계자로서 너무 지식이 많거나 너무 똑똑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 아닐까?”라면서 “김대중으로서는 노무현이 노동자단체에 파고들어 그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정치적 노력을 했었던 경력에서나, 그의 장인(권오석) 어른의 50년대 한국전쟁 당시 맹렬히 활동한 좌익 경력에서 보거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걸어온 역경이 너무나 유사한 노무현을 가장 자신의 정책을 무리 없이 계승할 인물로 선택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盧로인해 자존심 구겨진 호남민들

노무현이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2003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만 5년간을 집권했다. 집권 하는 동안에 김대중과 호남민들을 곤혹스럽게 한 것이 일들이 여러 가지 있다. 우선 노무현을 집권하자마자 열린 우리당을 만들어 2004년 총선을 치렀다. 민주당에서분당, 딴 정치 살림을 차렸다. 신당을 만들어 민주당의 맥을 끊은 것이다. 또한 김대중의 최대 업적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을 흡집 내게 한 대북특검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 특검으로인해 김대중의 남북정상회담의 업적이 훼손되어 “대북 퍼주기”라는 비난을 받는 계기가 됐다. 노무현은 한 발언에서 “호남민들이 나를 찍은 이유는 이회창이 싫어서“라는 투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호남민들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 ”뭐 주고 뺨 맞은격“이라며 격앙했다. 호남민들은 가장 실망시킨 것은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게 권력을 내준 것. 대선에서 재집권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이 인기 없음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 호남집권은 영원히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그의 글도 호남민들의 비난 대상이 됐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호남 정치권-민심은 휴면상태에 들어갔다. 호남정권이 끝났다는 패배감이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휘발유를 뿌렸다.

노무현은 지난 9월 22일 ‘민주주의 2.0’에서 호남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때 노무현은 “민주당의 지지가 그 정도로 확대되면 민주당이 승리를 할 수 있을까? 호남의 단결로는 영원히 집권당이나 다수당이 될 수가 없다”고 단언하면서 “호남이 단결하면 영남의 단결을 해체할 수 없다. 호남에서도 정당 간 경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호남이 포위에서 풀려날 수 있다. 그래야 호남의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안방정치, 땅 짚고 헤엄치기를 바라는 호남의 선량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 호남표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수도권의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면서 “저의 희망은 제발 민주당이 선거구제 개혁에 전력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선거구  개혁은 지난날 김대중 대통령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박상천 원내총무와 일부 호남 정치인들은 하는 척 하다가 말았다. 지역주의로 국회의원이나 쉽게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들과 저는 바로 동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은 “호남의 단결로는 영원히 집권당이나 다수당이 될 수가 없다”고 단언이 호남 민심을 동요케 만들었다. 노무현이 호남의 지역주의를 거론했지만, 사실상 지역주의는 호남이 만든 게 아닌 영남이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영남이 지역주의로 포위하는 바람에 호남은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지역주의가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는 호남민중이 애써서 만든 게 아닌데 그런 것처럼 말했기 때문에 민심이 격앙됐었다.

DJ의 측근 박지원의 비판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런 인연관계로 본다면 그의 대외적 발언은 김대중의 복심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위치에 있는 박지원 의원이, 이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내 놓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9월24일 아침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판의 발톱을 드러냈다.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도 유독 호남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전제하고 “호남사람들이 노무현 좋아서 투표했느냐, 이회창 당선 안 시키려고 했다, 호남당 벗어나기 위해서 열린우리당 창당했다, 호남민심이 더 나빠져야 된다, 이런 말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하면서 연정 제안을 했지 않았나? 그러면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은 어디 표로 당선을 했나? 호남표로 당선을 하고 이건 진짜 전직 대통령께 말씀드리기는 곤란한 말 같지만 배은망덕한 말 아니겠나? 나는 굉장히 불쾌하다”고 비판했다. 호남인들이 노무현을 싫어해 왔는데 그런 호남 민심을 등에 업은 비판인 셈이다.

이런 비판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노무현의 “호남표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수도권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는 발언에 대해, 각을 세웠다. 박 의원은 “사실 민주당을 망친 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아닌가? 민주당 정책으로, 공약으로, 민주당 제 지지 세력으로 당선됐다, 당선시켜준 당을 분당시켰지 않았나? 그리고 결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이 받았던 지지표를 이번 선거에선 반 토막 내서 한나라당에다 정권을 바쳐 준 꼴 아닌가?”라고 조목조목 비난하면서 “한나라당 공천이면 무조건 당선되는 영남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먼저 말해야지 표 찍어주고 지지해준 호남 분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호남 국회의원들에게 말하는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말이라고 생각이 된다. 세계 어느 나라나 자기 지지를 해준 기반이 있다. 그 기반을 기초로 해서 영역을 넓혀 가야지 지지기반을 없애고 영남으로만 가야 한다는 것은 마이너스 정치”라고 쏘아부쳤다.

장성민 "추악한 영남패권주의”

김대중 정권 시절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던 장성민 전 의원도 노무현 비판에 나섰다. 장 정 의원은 9월24일 낸 논평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근 호남 비하 발언은 자신을 지지했던 호남인들에 대한 용납될 수 없는 배신행위이자, 지역주의를 증폭시키려는 망언”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그는 “자신의 집권기간 동안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주장하여 자신을 지지했던 모든 민주개혁진영과 호남에 좌절을 안겨줬던 영남 지역패권주의의 연장선인 것이다. 국정 파탄과 민주세력 분열로 정권을 한나라당에 헌납했던 친노 세력이 호남을 희생양으로 정치복귀를 꾀하려는 술책이자 국민기만”이라고 힐난 했다.

장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이 단결하면 영남의 단결을 해체할 수 없다'며 호남인을 중심으로 한 민주개혁세력의 역사적 정통성과 도덕성을 뿌리 채 부정했다. 호남의 단결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권의 광주학살에 대한 정당한 민주화 투쟁이었으며, 최근 촛불집회처럼 국민 저항권을 실현하는 민주적 권리였다. 그럼에도 마치 호남이 단결해서 영남이 그동안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지지했던 것 인양 본질을 호도하고,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호남인의 자존심을 짓밟고 대한민국 민주화의 뿌리를 부정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일제 때 조선 민중들이 독립운동을 하기 때문에 투옥시켰다는 일제의 논리와 똑같은 반역사적, 반민족적, 반민주주의적 망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때 장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미 '호남 사람들이 노무현 좋아서 투표했느냐. 이회창 당선 안 시키려고 했지'라며 한나라당에 터무니없는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호남출신인 김대중 대통령보다도 더 많은 지지를 보낸 호남유권자에 대한 모독이자, 배은망덕한 정치적 배신행위이다. 일차적으로 자신의 지지자를 대변해야 한다는 정당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배신한 행위였다. 그는 이 점에서 정당 파괴자인 것이다. 그리고 정당의 정체성을 함몰시킨 당사자이다.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호남유권자에 대한 잇따른 비하발언은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하는 지역주의 타파의 본질이 추악한 영남패권주의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난의 도를 높였다.

가슴 속에 남은 미움의 앙금

김대중과 호남민들에게 있어 노무현의 집권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그래도 김대중 정권이 5년 더 연장 됐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기간은 어깨 펴고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 진영과 호남민들은 호남정권-김대중의 후계자 노무현에게 "크게 실망했다"는, 가슴 속에 가라앉아 있는 미움의 앙금을 지우질 못하고 있다. 이것이 김대중-호남의 정치적 데릴사위 노무현의 한계였던 셈이다. moonilsuk@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