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상

그녀에게 딱 걸리면 빠져나갈 구멍 없다

daum an 2009. 5. 26. 02:45

그녀에게 딱 걸리면 빠져나갈 구멍 없다
저작권경찰 최신희 씨

 

안기한 기자 /시사우리신문

 

18일 오후 서울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 10층 불법저작물 상설단속반 서울사무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점심식사 후 게슴츠레한 눈으로 잠시나마 나른한 오후를 보낼 때쯤, 이곳은 뭔가 달라보였다.

책상마다 놓인 PC에서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리가 미세하게 지속적으로 들리고, 직원들은 무엇이든 ‘이상한 낌새’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강렬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최근 불법 저작물 유통이 의심되는 한 온라인서비스제공(OSP) 업체로부터 압수한 수십만 건에 이르는 회원명단과 업로드 자료를 분석 중인 PC는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벅찼는지 장시간 모니터의 커서만 깜빡거렸고, 이를 바라보는 직원은 애간장이 타들어가듯 초조한 모습이었다.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불법저작물 단속반 서울사무소
 
지난해 9월18일 저작권 침해사범 단속전담 조직인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저작권경찰(특별사법경찰관)’이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지 8개월. 저작권경찰 28명이 서울, 대전, 광주, 부산 등 4곳에 현장사무소에서 전국에 걸쳐 저작권 침해 단속에 나서고 있다.

저작권경찰, ‘고압적’ 이미지와 거리 멀어

이날 방문한 서울사무소에는 10명의 저작물 단속 특별사법경찰관이 근무하고 있었다. 서울, 경기, 인천뿐만 아니라 강원지역도 이들의 활동무대. 단속 경찰력이 제한적이다 보니, 특정 사안을 타깃으로 한 기획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딱 걸리면 빠져나갈 구멍 찾기가 쉽지 않다고 소문난 것도 이 같은 수사방식 때문이다.

이 사무소에서 유일한 여자 단속경찰관인 최신희 씨(40, 7급)는 경찰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어색할 정도로 차분하고 여린 평범한 아이 엄마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단속경찰이 이렇게 온화해 보여도 되는 겁니까?”

최 씨는 “경찰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저작권경찰 대부분이 편견과는 달리 전혀 무섭지도 고압적이지도 않다”고 전했다. 또 일반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사람은 누구나 보직을 받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과거 체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최 씨는 ‘20년 근속’을 1년 반 남겨둔 절정기의 공무원. 하지만 지금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생각에 음반·영상·출판·SW 등 복잡하고 광범위한 저작권에 대해 배우고 또 배우며 불법적 저작권 침해행위를 찾아 저작권 보호에 나서고 있다.

 

 

서울사무소의 홍일점 최신희씨. 직업상 얼굴이 알려지면 안되는 관계로 뒷모습만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최 씨는 “저작권경찰은 저작권법 위반자를 단속하는 것에 그치지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등 문화산업 발전에 디딤돌이 되는 공무원”이라며 ‘저작권 지킴이’로써의 강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불법저작물 단속은 권리 되찾아주는 일

다만, 저작권경찰이면 으레 생기는 특유의 직업병은 감수해야 한단다. 어디를 가도 그곳에 비치돼 있는 홍보책자의 표지에 나온 그림이나 사진을 보거나, 또는 카페에서 흐르는 음악을 듣다보면 ‘저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습관적으로 떠오른다는 것.

불법 저작권 수사는 치밀하게 이뤄진다. 보통 OSP를 통해 입수한 불법 저작물에 대한 기본 데이터 분석을 시작으로 헤비업로더들을 찾아내 송치하기까지 꼬박 2개월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수십만 건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와 씨름하며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야 한다. 조사실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와 지루한 심리전이 펼쳐지다가도, 확실한 물증 하나로 꼼짝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치밀함에서 나온다.

최 씨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불법 저작물 단속은 단순히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저작자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라는 확실한 소신을 갖고 있다. 이러한 소신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최 씨의 오랜 삶의 방식이 밑바탕이 됐다.

그는 대학시절 ‘사랑과 추억’이라는 외국영화에서 생일축하곡인 ‘Happy birthday to you’ 노래 몇 소절을 부르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에서 이 노래를 삽입곡에 포함시킨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때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영화 삽입곡에 대해 친절한(?) 언급이 없었던 시절이라, 그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최 씨는 “지금 되돌아보니 그게 바로 문화 전반에 깔린 그 나라의 ‘저작권 인식’을 알려주는 지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며 “요즘 한국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보면 저작권 인식이 한층 높아진 것을 보게 되는데, 우리가 노력하면 이처럼 저작권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이 점차 확산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 씨는 또 “단속만으로는 저작권 침해행위를 근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비자발적 침해자와 같이 비영리 목적의 저작권 침해행위가 아직도 많음을 볼 때 저작권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 단속 어떻게 이뤄지나?

‘고작 28명의 저작권경찰이 무슨 단속을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지만 ‘공조수사’라는 것이 있다.

 

 

 저작권경찰은 저작권 침해 감시 전문기관인 ‘저작권보호센터’의 온·오프라인 모니터링 자료를 적극 활용한다. 저작권경찰이 출범한 지 6개월 만인 지난 3월, P2P와 웹하드 등 온라인을 통해 직업적·상습적으로 불법저작물을 유통시킨 헤비업로더 61명을 적발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저작권보호센터와의 공조가 큰 도움이 됐다.

지난달 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각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을 평가해 내놓은 ‘스페셜 301조 보고서’에서 한국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지재권 감시대상국에서 제외되는 희소식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저작권 특별사법경찰제 도입과 불법저작물에 대한 강력한 단속 등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규태 서울사무소장은 “최근 들어 불법 저작물 공유 방식이 지능화되고 있어 (불법 저작물) 원제작자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데이터 분석을 위한 대용량서버와 신기술을 접목한 모니터링 시스템, 인력충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불법저작물에 대한 24시간 감시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음악저작물의 경우 지난해 구축해 현재 시범운영 중인 불법음원 자동추적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으며, 영상물에 대해서는 올해 중 자동시스템을 추가로 구축될 예정이다. 주말 및 심야시간대 등 감시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재택근무 인턴 40여명을 채용해 이 시간대의 모니터링도 강화한다.

헤비업로더들에 대해서도 집중단속을 강화하고, 단속범위를 웹하드, P2P 등 특수유형의 OSP에서 포털, UCC 등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고 단속시기도 기획단속에서 상시단속으로 바꿔 나갈 계획이다. 오프라인 상의 단속도 상시 단속활동으로 강화키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또 단속 강화를 위해서는 저작권경찰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역사무소를 현재 4곳에서 6곳으로 확대(인력 41명→100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