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세상

늦가을에 찾은 마이산 여행기

daum an 2014. 11. 6. 13:49

11월 첫 주말인 지난 2일 오전 10시 마이산에 도착했다. 마이산[馬耳山]은 서로 등지고 있는 기이한 모습의 두 봉우리로 이루워져 있어 멀리서 바라봐도 한 눈에 들어온다.경남과 전북 경계선 부근부터 내리기 시작한 늦은 가을비는 오락가락 했다.마이산 입구에서 우비를 구매하고 빗줄기를 맞으며 정산을 향해 한 걸음 한걸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짙게 물든 가을 단풍이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게 했고 비마져 내려 또 다른 자연의 색(色)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마이산의 서로 등지고 있는 두봉우리는 노령산맥의 줄기인 진안고원과 소백산맥의 경계에 자리하여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흙이 전혀 없이 암석으로 만 된 두 봉우리는 흡사 말의 귀와 같은 모습처럼 생겼다하여 보여 마이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두 봉우리로 이루워진 세계유일의 부부봉으로 동쪽 동봉(숫마이산)은 해발 680m이고 서쪽의 서봉(암마이산) 686m이다. 또한,세계최고의 여행 안내서인 프랑스미슈랭그린가이드에서 별 3개의 만점을 받아 대한민국 최고의 명소로 각광 받고 있다.
 
마이산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진안읍 단양리 산 127-1 소재에 위치하고 있다.명승 제12호로 지정된 마이산은 지정구역은 206,423㎡ 로 1979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1983년 8월 24일 충북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10월 31일 명승 제12호로 변경됐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색(色)다르다는것이 다른 명산에 비해 특색이고 자랑이다. 봄에는 안개 속을 뚫고 나온 두 봉우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이 울창해지면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고 불린다.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이기 때문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군데군데 관목과 침엽수·활엽수가 자란다.

 

매년 4월에는 3㎞에 걸쳐 벚꽃이 만발해 진안군에서 주최하는 벚꽃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늦가을의 단풍은 빗줄기 젖어 더욱 선명했다.마이산탑(전북기념물 35), 마이산 줄사철나무군락(천연기념물 380) 등의 문화재와 은수사(銀水寺)·금당사(金塘寺) 등의 고찰이 있다. 마이산은 바위산으로 이국적인 경관이 아름답고 특이하며, 수많은 풍화혈이 발달하여 학술적 가치가 크다. 마이산 8경으로는 화엄굴,타포니현상,역고드름, 은수사,탑영재,금당사,이상묘,탐사등 유서 깊은 절들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기 시작했으며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물줄기 발원지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의 발원지라고 한다. 지질은 백악기의 역암(礫岩)으로 동봉과 서봉 사이에 448개의 층계가 있고,숫마이봉 중턱에 자리잡은 화암굴(華岩窟)은 마이산봉이 서로이어지는 부분에서 동봉쪽으로 150m 올라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굴속에 작은 샘이 있다.화암굴 샘물은 아래에서 솟는 물이 아니라 동붕의 봉우리에서 바위틈을 타고 내려 오는 석산수이다.

 

 

 

 

 

 

 

 

 

 

 

 

 

 

 

 

 

 

 

 

 

 

 

 

 

 

 

 

 

 

 

 

 

 

 

 

 

 

 

 

 

화암굴(華岩窟)이라 함은 예전에 한 이승이 이 굴에서 인화경,화엄경등 두 경전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남녀,또는 부부로 비견하여 동봉을 속한 숫마이산,서봉을 암마이산이라 하는데 동봉인 숫마이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남성의 상징처럼 생겼다.이 봉우리 아래굴에서 나오는 샘물이니 의미가 다르다고 여겨 아이를 갖지못한 여인이 이 물을 받아 마시면 득남할수 있다는 전설이 이어온다.하지만 현재는 최근 조류(비둘기 등)수시로 드나들고 무속인들의 촛불등의 오염이 되어 음용수로 사용 할 수 없게 됐다.

 

마이산봉이 서로이어지는 부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은수사라는 사찰이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한국불교태고종 은수사(銀水寺)는 고려장수 이성계가 왕조의 꿈을 꾸며 기도를 드렸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기도중에 마신 샘물이 은같이 맑아 이름이 은수사(銀水寺)라 붙여졌다.

 

현재 샘물곁에는 기도를 마친 증표로 심은 청실배나무가 천연기념물 386호로 지정되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왕권의 상징인 금척을 받는 몽금척수수도와 어좌뒤의 필수적인 그림인 일월오봉도가 경내 태극전에 모셔있다.또한 신라시대 때부터 소중한제사를 지내던 소사(小祀)터의 기록과 태종실록을 바탕으로,매년 군민의 날 전날인 10월11일 산신제를 지나는 마이산신제단이 바로 뒤 수마이봉 아래에 있다.

 

 

 

 

 

 

 

 

 

 

 

 

 

 

 

 

 

 

 

 

 

 

 

 

 

 

 

 

 

 

 

 

 

 

 

 

 

 

 

 

 

 

 

 

 

 

 

 

 


은수사(銀水寺)를 등 뒤로 하고 내려오면 아~아~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이곳 마이산 탑사는 약 100여 년 전 이갑용(李甲用)이 쌓아올린 80여 기의 돌탑인 마이산탑(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35호)으로 이루어졌는데, 불규칙한 자연석을 모아 원추형 혹은 기둥 모양으로 쌓은 것이다.마이산 탑사의 주인공은 이갑룡 처사로 1860년 3월 25일 전북임실 둔덕에서 효령대군 15대손 이성우씨 차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어려서 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부모의 상을 당하여 묘역에 움막을 치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친뒤 인생의 허무함을 통탄 전국 명산을 전전하며 수양을 쌓다가 25세 때 마이산에 정착 솔잎으로 생식하며 수도 정진중 신의 계시를 받아 만불탑을 축석했다고 전해진다.만불탑은 천지음양이치와 팔진도법을 적용하여 30여년에 걸쳐 탑을 완성 시킨 뒤 용화세계 억조창생의 구제와 만인이 짖는 죄를 대신해 비는 기도로서 일생을 보내고 1957년 98세 일기로 생을 마쳤다.이처가 남긴 유물은 탑 외에도 신의 계시를 받아 쓴 30여권의 신서와 모든 재난과 재앙을 막아주는 부적등이 있다.특히,만불탑은 흔들리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신비 오묘함은  중생 구제의 상징으로 영원히 빛날 것이다.

 

 

 


마이산의 겨울이 찾아오면 마이산 탑사와 은수사 천황문일대에는 정화수를 떠 놓으면 얼음기둥이 하늘로 솟아 오르는 역고드름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역고드름은 최대 20~35cm정도 자라며 이러한 신비한 현상은 마이산만이 가질수 있는 최적의 환경으로 풍향,풍속,기온,기압등 복합적인 영향으로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로 베일속에 있다.또,역고름이 생성되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이산 탑사에 갑작스런 비바람으로 몰아 치면서 인근 매점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동동주와 뜨거운 어묵 국물과 세상사를 나눠본다.비가 그치고 다시 하산길을 오르며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하고 시인이 되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