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먹이 정치에는 어떤 존재인지 일까?
정치인-조폭-연예인 커넥션 존재 밝혀져
강남 중심 군소 조직 형태로 늘어나는 추세
이성순(일명 시라소니)-공중머리 박치기, 김두환 (일명 잇뽕(한방))-어깨집고 양발차기, 이화룡 (일명 검은신사) 50년대 명동출몰의 황제, 이정재 (일명 마렌코프) 한국의 두산마를 꿈꾼 정치강패, 유지광 삼호회 등 조직의 귀재, 조양은 양은파 두목 3세대 주먹의 선두주자, 김태촌 서방파 두목-칼쓰기. 지금 소개한 사람들은 한국의 100년사 주먹의 대명사다. 이 주먹은 대를 물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졌다.
깡패는 영화의 단골 출연작. 영화 속 강패는 그 단순함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전해주는 감초 역할도 하지만, 의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멋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검찰 스폰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폭력과 권력의 공생관계를 파헤쳐 본다. <시사우리신문>은 김두환의 비서 역할을 하기도 한 정정웅씨와 그의 지인들(김동회, 이상욱), 당시 종로 상인들에게서 당대와 현재의 주먹 이야기를 들어본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담당했던 한 검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받아 현재에 이르는 주먹들의 이야기를 글로 담을 수 있었다.
<합법을 과장한 음지 생활>
해방 후 정치사에도 언제나 주먹이 따랐다. 주먹이 정치사에는 어떤 존재인지 일까?
이정재로부터 시작된 정치강패는 80년대 들어서도 사회 이슈에 끊이질 않는 잡음을 제공하면서 계속해 권력과 공존함을 알렸다.
자유당의 신임을 받던 이정재, 그리고 임화수와 유지광의 시대에서 정치깡패라는 변화된 주먹의 지도는 역사상 드물게도 통합된 시기를 맞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하게 된 깡패들은 부정선거, 고대생 테러사건 등으로 스스로 4.19를 불러오면서 자유당과 함께 세력을 잃고 5.16을 맞으면서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동대문 사단, 화랑동지회로 알려진 이 시기의 정치깡패들은 정치사에 깊숙한 발자취를 남기며, 권력과의 유착이라는 주먹의 가장 적나라한 공생관계가 표면에 들어나게 된다.
제 3세대 주먹. 사보이호텔 사건을 계기로 회칼시대를 연 3세대 조폭, 호남세력의 상경으로 서울의 밤은 더없이 잔인한 면모를 가지게 된다. 국민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숙청의 대상이었지만, 반면 정치세력의 보이지 않는 후원세력으로 음지에서 꾸준히 활동한다. 90년대 이르러 조직범죄는 더욱 세분화되고 합법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정재의 주먹 제2기가 권력에 의존했다면 조양은을 필두로 시작된 제3기 주먹들은 사채, 슬로머신, 도박, 주류, 유흥에 기생하면서 합법화를 과장해 담합과 건축 관련 이권에 동원됐다.
<3대 패밀리의 과거>
당시 사건을 담당한 모 검사는 "'범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의 뿌리는 50년대 중반 광주의 고교폭력써클 '케세라', '행여나', '오케이' 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졸업후 사회로 진출해서 광주시내 대호다방과 동아다방을 무대로 조직을 형성, 수년간 싸움을 벌였다.
치열한 폭력에서 승리한 대호파는 OB파로 개칭했다가 구OB파와 이동재가 이끄는 신OB파로 양분됐다. 또 패자인 동아파에서는 김태촌이 자신의 출신지역 이름을 딴 서방파를 결성, 독자적인 세력을 확장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구OB파 출신 조양은이 서울로 자리를 옮겨 호남파에 가입한다.
이들이 주먹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1975년 '사보이호텔' 사건. 이들을 중심으로 광주, 전주, 목포 등지에서 올라와 무교동 일대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호남파'는 70년대 초반까지 서울의 밤을 지배하던 기존의 '신상사파'와 조금씩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주류공급권과 정기적인 상납금 등을 둘러싸고 신상사파와 잦은 충돌을 빚던 호남파는 1975년 1월 명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에서 생선회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채 신상사파를 기습, 명동을 장악했다.
이후 호남파는 일정한 세력 조정을 거친 뒤 김태촌의 서방파와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로 삼분되면서 주먹계 '3대 패밀리'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즉 광주 OB파의 신.구로 대표되는 조양은과 이동재가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겨 계속해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김태촌과 조양은의 악연>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과 조양은의 악연은 3대 패밀리의 하이라이트다.
두 조직간 대결은 1976년 4월 서울 태평로 아시아호텔에서의 집단 난투극으로 비화하면서 광주 등 호남권 일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점으로 치닫던 대결은 공교롭게도 두목들이 검거되면서 종료된다. 전국 평정에 나선 조양은은 1977년 10월 4일 광주를 찾아 한 호텔에서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서울구치소로 압송된 조양은은 김태촌과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김태촌 역시 이동재 습격 사건과 신민당 각목대회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같은 시기에 자수해 왔던 것. 조폭 두목들이 모여든 서울구치소는 일순간에 긴장에 휩싸였다.
하지만 곧 그들은 구치소에서 화해를 하게 된다.
검찰은 1978년 6월 출소한 조양은이 그 해 11월 10일 서울 광주 대전 순천 등 각 지방 조직까지 규합, 전국적 규모의 ‘양은이파’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고 설명했다. 김태촌은 이듬해인 1979년 출소한다.
김태촌씨와 조양은씨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고 한다. 서로 자신이 최고임을 내세우는 두 사람은 쫓고 쫓기는 ‘전쟁’을 치르며 경쟁이라도 하듯 대형사고를 터뜨려 왔다. 교도소에서 만나 화해했다가도 출소하면 또 원수가 됐다. 그러면서도 결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조양은 20년 옥중생활, 아내로 인해 다시 태어나>
두 사람의 옥중 생활에 대해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폭력의 대가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름값’ 때문에 혐의가 과장됐으며 억울한 면이 있다는 것.
20년 가까이 수형 생활을 한 조양은. 그는 출소후 서울로 올라와 1년 가까이 편지를 주고받았던 김소영씨 집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충남 온양의 김 씨의 집 ‘푸른산장’에서 은둔의 시간을 가진 뒤 1995년 6월 10일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결혼식을 갖는다. 조양은은 “나와 아내를 연결시켜준 사람이 목회자로 알려졌는데 사실은 ‘천안곰’ 조일환 선배가 중간에 다리를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조씨는 영화 <보스>에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재기하는 한편, 신학대학에 입학한다. 노숙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세족식에도 참석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살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듯했다.
그러나 30년 이상 묵은 구습을 한 번에 떨칠 수는 없는 듯 조양은은 출소 1년 5개 월 만인 1996년 8월에 이어 2000년 12월에 도박과 외화 밀반출 등의 혐의로 잇따라 구속 수감된다.
세인들은 “과거와의 단절은 거짓이었다. 조양은은 세상을 속였다. 종교의 우산 속에 숨어 여전히 범죄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서 위장 신앙생활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 김소영씨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을까. 조양은은 다시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 이제 그의 나이도 61세이다.
<김태촌, 수감과 병마의 모질긴 인연>
김씨와 '서방파'가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6년에 일어난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이다. 당시 김씨는 이권에 개입한 검사의 청부로 저지른 일이라고 폭로해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씨는 1986년 징역 5년 및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았으나, 폐암이 발병해 1989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러나 1990년 정권 차원의 '범죄와의 전쟁'에서 폭력조직을 결성한 혐의로 다시 체포, 1992년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2004년 10월 출소한 김씨는 종교인으로 탈바꿈, 각종 신앙 간증 활동을 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김씨는 그 해 재수감 됐다가, 2005년 8월 보호감호를 규정한 사회보호법이 폐지됨에 따라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다. 교도소에 있었을 당시 도움을 줬던 일본인 목사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김씨는 노숙인 급식 활동 등을 해왔다.
그러나 이전 교도소 간부에 1000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2006년 11월 귀국하던 중 경찰에 검거됐다. 그는 건강상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수감 중 자주 병원신세를 지는 등 풀려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는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또다시 이름을 세간에 알린다.
한화측 요청을 받고 폭력배들을 끌어들인 혐의를 받고 있는 전 맘보파 두목 오모씨는 김태촌씨가 이끌던 범서방파의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1980년대 후반 김씨가 인천 유흥가를 접수하는 데 앞잡이를 한 그는 OB파 두목 이동재 습격 사건,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 등에 개입한 전력이 있다.
사건 당일 저녁 한화측 관계자가 들른 것으로 알려진 P음식점의 사장 나모씨는 김태촌씨의 직계 부하였다. 몇 년 전에도 구속된 적이 있다. P음식점은 김승연 회장이 종종 들르던 강남의 유명한 고깃집이다.
한편 일부 언론은 이 사건에 양은이파 전 조직원도 관련됐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청담동 G가라오케의 지분 소유자로, 한화측 요청으로 폭력배를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권투선수 출신 장모씨를 지목해서였다. 하지만 경찰이 관리하는 조직 계보에 장씨의 이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그는 일본인 친구로부터 “권상우가 시계를 받고도 팬미팅 공연을 해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지속적으로 권씨를 협박했다. 사건은 일명 ‘피바다 발언’이 공개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김씨는 실형을 선고 받아 지난해 12월 만기 출소했다.
<조폭과 연예인은 친해?>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에서 제작진과 주먹다짐을 벌인 유명 방송인 강병규(37)가 불구속 입건된 데 이어 인기 개그맨 이혁재(37)가 인천 송도에 있는 한 룸살롱에서 종업원들을 폭행해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당시 술자리에 인천지역 조직폭력배 두목이 동석한 사실이 알려졌다.
최근 불거진 연예인 탈선행각의 공통점은 바로 조직폭력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강씨의 경우 폭행에 가담한 인사들은 폭력배가 아니었음이 경찰 수사에서 밝혀졌지만 일각에서는 관련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룸살롱 여종업원과 남자 웨이터 등을 때려 입건 된 이씨는 실제 조폭 두목이 일행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곤혹을 치렀다. 수사당국은 문제의 조폭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밝혔지만 의혹은 가시질 않는다.
지난 2005년 2월 인기가수 조성모가 부산 공연을 마친 뒤 공연기획사 대표가 폭력조직 21세기파를 동원해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자, 본인은 칠성파를 동원해 이를 막은 사건은 유명하다.
아예 조폭과 손을 잡고 돈벌이에 나선 일도 있었다. 2005년 6월 인기 개그맨 H씨 등 유명연예인 3명이 ‘신촌이대식구파’와 손을 잡고 불법 유흥업소를 운영하다 적발된 것이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홍씨 등은 신촌이대식구파 고문이었던 전모씨와 손잡고 강남 일대에서 불법 유흥주점 여러 곳을 운영했다.
경찰 조사결과 해당 업소에선 여종업원과 손님 사이에 불법 성매매가 이뤄졌으며 업소 단골 가운데엔 동료 연예인 10여명이 포함돼 있었다.
<수감 중 연예인 동원?>
지난 2005년 5·31 지방선거 과정에서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조직폭력배가 특정 출마자를 돕기 위해 연예인 14명을 선거운동에 동원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른바 ‘정치인-조폭-연예인’의 삼각 커넥션이 실체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당시 살인 등의 혐의로 복역 중이던 조직폭력배 우두머리 전모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평택 시의원 출마자 최모씨를 당선시키기 위해 자신의 조직을 움직였다. 부하 조직원들을 시켜 동원한 연예인들은 최씨의 선거 운동에 나섰고 결국 최씨는 당선에 성공했다.
지난 2004년에는 배우 최민수, 개그맨 이휘재 등 톱스타 12명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특정 조직폭력배를 구명하기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국내 최대 폭력조직 서방파의 행동대장 나모씨가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팔다 적발, 구속되자 이들 연예인들은 재판부에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을 냈다.
이들은 나씨가 운영하던 대형 한우식당의 단골로 드나들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연예인들이 제출한 탄원서에는 웃지 못 할 문구도 적지 않았다. 특히 “나씨는 예술을 이해할 줄 아는 고마운 분이며, 선처를 희망한다”는 내용이 검찰을 통해 언론에 알려지자 대중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나씨는 자신의 한우식당에서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42억원에 달하는 부당이익을 챙기고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 22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된 처지였다.
모 매니저는 “웬만한 매니저들치고 조직폭력배와 안면이 없는 사람이 없다”며 “친분 여하에 상관없이 중간보스급 이상과는 어떻게든 연줄이 닿아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상당수 조폭 인사들이 정식으로 기획사를 차려 연예 사업에 뛰어들었다. 소속 연예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폭력 조직이 나서 해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
|
<진짜 배후는 따로 있다>
주먹계에선 정말 거물은 따로 있다며 조양은과 김태촌은 감옥 생활로 그들의 들러리 역할을 했다는 것.
두 사람이 조직폭력계의 대부였다고 해서 국내 주먹계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정통 주먹계에서는 두 사람을 보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표선수’도 아닌데 수사기관과 언론이 키웠다는 것이다. 모 조직의 한 간부는 “3대 패밀리는 언론이 키운 ‘매스컴 주먹’”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두 사람은 노출된 주먹이고 실제로 암흑가를 움직이는 것은 드러나지 않은 주먹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정웅씨는 “진짜 주먹들은 따로 있다”고 밝혔다.
드러나지 않은 주먹은 ‘실세 주먹’ ‘귀족 주먹’으로 불린다. 안정된 지역 기반을 갖춘 이들은 대부분 재력가이고사업가다. 권력층과의 친분도 두텁다. 웬만해선 교도소에 가지 않으며 가더라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들은 전국 어디에서나 통하는 명성과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장막 뒤에서 주먹계를 좌지우지한다. 따로 조직을 거느리고 있지는 않지만 급할 땐 자신의 영향권에 있는 ‘후배 보스’와의 긴급 연락망을 통해 수백여명을 동원하기도 한다.
모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인 강모씨는 "원로 전국구 주먹 조일환씨가 존경 받는 선배이다. 조양은씨와 김태촌씨의 선배 주먹들은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시미칼 시대’를 열고 선배를 공격하는 등 주먹계 위계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정통 계보에 끼워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
<용팔이 사건이 사실상 3세기 마지막>
‘사회악 일소’를 내세운 군사정부의 정치깡패 척결 작업은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당시 혁신계도 박정희 장군의 좌파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일반 국민의 경우 혼란한 사회상의 질서가 잡히는 것에 대해 호응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신당 창당 방해 공작을 한 ‘용팔이’ 김용남씨는 2009년에 낸 <나는 매일 눈물로 성경을 쓴다>라는 책에서 당시 폭력을 사주한 사람들의 “어려운 때 나라를 구할 사람은 김동지 밖에 없다. 나중에 국회의원 자리도 보장하겠다” 등의 감언이설에 속아 앞장섰다면서 “나는 제2의 김두한이 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도주한지 1년 5개월 만에 잡혀 감옥에서 나온 뒤 현재 종교에 귀의하는 한편 간판사업에 매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08년 촛불시위. 촛불시위에 맞서 가스통 시위 등을 벌인 특수임무수행자회나 “공권력에 도전해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공공의 적과 맞서 싸우겠다”며 결성된 국민행동본부 애국기동단 등을 두고 일부에서는 ‘정치깡패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한 시사평론가 “얼핏 보면 과거의 정치깡패와 유사하게 보이는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면서도 “과거는 정권이 직접 사주한 것이라면 촛불시위 때 일부 보수세력의 움직임은 스스로 나섰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
<제 4기의 주먹 활개>
대검찰청은 지난달 12일 전국 관리대상 조직폭력배(간부급)가 2001년 4천153명에서 지난해 5천450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조직 수도 같은 기간 199개파에서 223개파로 늘었다. 그런데 일선 경찰서에서는 조폭 사건 접수는 잠잠하다.
이를 두고 검찰 관계자들은 “전국구 조폭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 광역수사대장은 “한 조직이 강남 중심가를 차지하는 대신 10~30여명을 조직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소규모로 진출하고 있는 형태다. 지난해 이 지역에서 강력범죄로 검거된 조폭 사건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상 ‘범죄 단체’가 아닌 ‘조직성 범죄(단순 집단 범죄)’ 1건에 그쳤다. 현재는 10여개 군소 조직이 지역적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조폭들은 합숙소 마련, 신입 조직원에게 행동요령과 폭행기술 등을 가르치고 사시미칼(회 뜨는 칼)을 변형해 칼 손잡이에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테이프를 감는다고.
이에 대해 수사대장은 “칼이 깊게 들어가면 사람이 죽잖아요. 안 죽을 정도로만 찌르기 위해 테이프를 감았던 거죠. 조폭들 스스로 강력범죄를 경계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합숙소나 사무실에 야구방망이 등 ‘연장’을 숨겨놓는 경우도 줄었다. ‘상황’이 발생하면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방망이를 사와 쓰고 버릴 정도로 조심스러워 졌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설명이다. 정부가 민생침해사범 단속을 위해 2008년 이후 매년 7개월씩 조직범죄 집중단속을 벌이는 등 사법당국의 공세가 거세진 데 따른 변화로 해석된다.
유흥업소 일색이었던 사업 방식도 합법적인 ‘먹을거리’ 물색에 나서고 있다. 연예 등 각종 기획사와 건설업, 대부업, 게임업은 물론 기업 인수·합병(M&A) 시장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들을 제 4기 주먹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원로 주먹들은 제3기까지의 주먹들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정씨는 “자신들도 3기 주먹을 인정하지 않듯 제4기 주먹을 인정하는 폭력배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폭 수사는 기본적으로 근거지 관할 경찰서가 담당하며 그 기본적인 계파를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움직이면 다른 관할로 정보가 넘어가는 시스템이다.
어느 지역에서 어느 지역으로 진출했다면 어떤 업종으로 바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보를 상부에 보고하고 담당 경찰서에 알려준다는 것.
|
<늘어나는 조폭, 군소 집단>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발효 이후 유흥업소 영업도 힘들어졌고, 시민 신고의식이 높아지면서 보호비 명목 등의 갈취도 쉽지 않아졌다. 집중단속 기간에는 조폭이 학생들의 돈을 갈취한다는 제보가 들어올 정도다.
조폭은 예전의 화려함을 잃은 지 오래다. 경찰 관계자는 “겉으로는 외제차에 검은 양복을 빼입고 다니지만 숙소를 털어보면 돈 한 푼 없이 체육복 차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래도 조폭 수는 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찰청 관계자는 일반인이 갑자기 돌변해 사람을 죽인다던지, 게임상 캐릭터를 모욕했다며 칼로 난자하는 이 시대의 병폐가 불러온 요인이 가장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왕따’, ‘조폭영파 등의 막연한 추종심’이 젊은 청년들에게 급속도로 확산됐다는 것. 이 때문에 조직 행동대원급을 ‘형님’으로 모시는 20대 안팎의 젊은 청년이 많아졌다. 이들 중 일부는 고스란히 조직원으로 흡수된다. 조폭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모방심리 탓이기도 하다.
큰 조직의 간부들이 별도 조직을 만들면 일시적으로 조직원 수가 증가한다. 일반 음식점이나 영세 건설업 등을 차지하며 소규모로 분가한 조직이 늘면서 숫자는 일정 부분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조직 간 유혈 폭력사태는 줄어들었다. 이권이 충돌할 경우 전쟁 대신 물밑 협상으로 타결하는 식이다.
이렇다보니 범죄단체로 처벌하려면 조폭 합숙소를 찾아내는 게 중요한데 점점 적발이 어려워지고 있다. 합숙소 연락처는 관리자 외에는 비밀이다. 단속 눈을 속이기 위해 합숙소를 주택가 등에 마련하기도 한다. 어렵게 찾아내더라도 흉기나 조직 구성원과 관련된 증거는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일회성 범죄로 처벌하긴 쉽지만 범죄 조직 전체를 박멸하기 어려운 이유다.
폭력조직은 폭처법 제4조에 의해 ‘범죄 단체’로 처벌받는다. 두목은 10년 이상 징역에서 사형까지, 간부는 7년에서 무기징역형까지 받게 된다.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 신흥 조직이 주로 걸려든다.
이들은 출소후 나와바리 중심으로 활동하던 과거 양상과는 달리, 20억∼50억 상당의 나이트클럽을 직접 운영하거나 경매 및 민사분쟁 개입 등을 통해 안정적 조직운영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조직의 형태 또한 두목-부두목-행동대장-행동대원-고문-자금책 등의 직책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다른 조직과 연대도 가능하기 때문에 종종 패거리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
<4기 주먹, 최첨단 장비 이용>
청소년들 사이에서 학원폭력조직인 일진회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사회의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시기에 맞춰 젊은 세대들이 조직폭력배로 탄생하고 있는 것.
경찰은 지난 2007년 5월까지 전국적으로 조폭이 222개파 5269명으로 5년 전보다 조직수는 6.7%, 조직원 수는 17.8%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90년대 이후의 조직들은 과거 거대 ‘패밀리’형태로 운영되던 폭력조직에 비해 그 연령층이 10대로 낮아지고 있고 규모도 작아지고 있다.
또 폭력조직들은 합법화·기업화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들은 각종회사를 차려놓고
이를 기반으로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이권사업에 뛰어들어 조직을 보존하는 것이다. 노트북과 PDA등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공권력과 결탁하고 자본과 유착하며 성장해가고 있는 현재의 조직범죄를 생각해본다. 과연 조직화된 폭력집단의 구성을 원천적으로 막을 순 없을까?, ‘그들을 원하고 필요로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역사나 체험을 통해서 분명히 체득한 사실이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매체를 통해 조폭문화를 동경하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실상을 분명하게 알려서 그들이 음지에서 살아가게 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
'뉴스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남지하상가 붕괴사고 수습지원본부 가동 (0) | 2010.05.24 |
---|---|
어린이가 우리집 금연운동가 ! (0) | 2010.05.19 |
오세훈vs한명숙 (0) | 2010.05.07 |
김형오 국회의장,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오찬환담 (0) | 2010.05.07 |
선거유세로봇 (0) | 2010.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