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상

부산 범어사 일제잔재 걷어낸다

daum an 2009. 8. 12. 23:30

부산 범어사 일제잔재 걷어낸다

 

박인수 기자 /시사우리신문

 

8·15 광복 64주년을 앞두고 범어사(부산광역시 금정산 소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주지 정여)에서는 일제에 의해 왜곡되어 온 민족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한 본격적인 왜색잔재 청산작업을 시작한다.

일제잔재의 상징물인 조선총독부 표지석 제거와 3층석탑(보물 제250호)을 원형대로 복원하기 위한 난간석 해체를 신호탄으로 본격화될 범어사의 일제잔재 청산작업은 범어사의 민족문화 복원 및 중·장기 발전 계획인 ‘범어사 종합 정비 계획’(2014년까지 총 예산 200억 예상)의 1단계사업으로 오는 2011년까지 총 예산 50억의 규모로 추진될 예정이다.

범어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로서 임진왜란 때 승병의 사령부로 왜적을 퇴치하고, 3·1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외세에 맞서 민족을 수호 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온 호국도량이다.

범어사는 한국불교건축의 진수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사찰로서 창건 당시부터 가람 배치는 전통 불교건축 양식인 상. 중. 하단의 3단구성의 틀과 함께 선교양종(禪敎 兩宗)의 교리적 측면을 적용한 체용설(體用說)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원칙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사찰을 이후 중창건 하는 과정이나 오랜 기간 동안의 크고 작은 다양한 불사를 행할 때에도 철저히 지켜져 일제강점기 이전의 범어사의 가람배치는 전통불교건축의 고유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범어사의 전통적인 가람배치와 문화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강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고 왜곡되게 된다.

범어사의 가람배치와 문화재 등이 훼손, 왜곡된 시기는 1927년 이후로 추정되고 있는데, 1936년 7층 사리보탑(七層舍利寶塔) 이건을 기화로 본격적으로 왜곡, 훼손되었음을 ‘석가 여래사리탑이건비’는 전하고 있다.

당시 일제는 7층사리보탑을 대웅전 우측의 옛 관음전자리로 강제 이건하여 상단 영역을 크게 훼손하였고 뒤이어 중단영역의 종루 또한 옮김으로써 범어사의 가람배치는 고유양식인 삼단기법의 틀과 체용설의 기반에서 크게 벗어나 왜곡된 형태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이외에 일제에 의해 자행된 왜색잔재들을 살펴보면 우선, 상단부분의 대웅전 전면에 식재되어 있는 금송(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나무) 3그루, 일본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는 대웅전과 관음전 전면에 있는 난간대, 그리고 중단부분의 석등과 석탑의 이동으로 체용설을 크게 왜곡한 것과 3층 석탑의 상륜부와 기단부분의 변형, 난간대의 설치, 미륵전 방향의 조선총독부 푯말 돌기둥, 보제루의 변형 등과 마지막 하단부분의 천왕문 에서 불이문 영역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나무를 베어내고 일본나무인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대량 식재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해방 이후 범어사는 1950년대 불교정화운동의 발상지로서 한국근대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움과 동시에 사찰내의 일제잔재 청산작업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결과,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부산광역시 문화체육관광국, 금정구청 등의 협력으로 본격적인 일제잔재 청산작업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제잔재 청산 불사에 대해 정여스님(범어사 주지)은 인사말을 통해 “먼저 관계당국의 이해와 협조에 감사드린다”면서 “해방이후 1950년대 범어사가 주도했던 불교정화운동이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 정신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이번 왜색잔재 청산은 아직도 사찰에는 물론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일제잔재를 뿌리 뽑고 민족문화를 회복하는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박재민 금정구청 총무국장은 “이번 조선총독부 표지석 제거를 계기로 범어사가 일제잔재를 뿌리 뽑고 본래적 가람의 모습을 되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으며, ‘범어사 종합정비계획’의 연구책임자 서치상 교수(부산대 건축학부 교수, 부산시 문화재위원)는 “범어사 뿐만 아니라 한국 사찰 속에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어 왜곡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며 “범어사의 가람배치를 전통적인 불교건축양식인 3단구성의 틀과 체용설에 따라 복원하는 것은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이자 한국 사찰의 보편적 건축 양식을 찾아 후대에 널리 전승하기 위한 첫 걸음”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