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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무현 前 대통령 오늘 안장식, 헌화·분향 시민대표 14명

daum an 2009. 7. 11. 13:53

시민 속에서 노무현을 만나다
故 노무현 前 대통령 오늘 안장식, 헌화·분향 시민대표 14명

 

7월 10일 오늘 봉하마을에서 엄수되는 노무현 대통령 안장식에는 여느 안장식에선 보기 힘든 색다른 순서가 들어 있다. 평범한 시민 14명이 ‘시민대표’로 고인 영전에 헌화 분향할 수 있도록 했다.

평범한 시민들과 함께 하며 항상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자 했던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 힘없고 소외 받는 사람들 편에 서고자 했던 정치적 지향. 이런 가치를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분들을 시민대표로 모시기로 했다고 이병환 봉하전례위원장이 '사람사는 세상 봉하마을'에 글을 올렸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고선 맺어질 수 없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인연을 대통령 추모의 자리에서 우리와 공유하게 된다고 이병환 봉하전례위원장은 밝혔다.  

이 위원장은 "많은 국민들이 그들을 통해 대통령님 삶의 한 자락을 추억하길 원합니다. 봉하 전례위원회는 7월 9일, 이러한 취지에 맞는 안장식 헌화·분향 시민대표 13명을 최종 확정해 공개합니다."라며 아래와 같이 시민대표를 발표했다.


○ 윤연희 : 대통령님 인권변호사 시절 무료변론을 해준 ‘부림’사건 연루자

서슬 퍼런 81년 국가보안법 시대, 부산에선 이른바 ‘부림사건’에 연루돼 많은 이들이 불법감금과 고문을 당했습니다. 피폐해진 그들을 안아준 이는 노무현 변호사. 무료변론에서 노 변호사는 “저 젊은이들이 고민했던 문제의 핵심은 휴머니즘입니다”라고 외치며 그들을 대변해줬습니다.
○ 한창길 : 국회의원 시절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고 도와준 원진레이온 노조 대표

수십 년간 유독가스 속에서 일하면서 고통받던 한 사업장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수십 명이 사망에 이르렀고 대부분 전신마비 언어장애를 얻었습니다. 1989년 이들이 ‘직업병 인정’ 투쟁을 할 때 노무현 의원이 따뜻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들은 “독가스가 풍기는 현장에 (돕겠다고 온 사람들이) 모두들 코를 틀어막고 외면했지만 노 의원만은 유일하게 현장을 둘러보고 피해자들을 격려했다”고 기억합니다. 정부로부터 정식 ‘직업병 인정’도 받아냈습니다.
○ 이일순 : 대선 때 찬조연설 방송한 ‘자갈치 아지매’

2002년 12월 4일 저녁, 노무현 후보 찬조연설 방송이 나간 뒤 ‘시민스타’가 탄생했습니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장사하는 평범한 아줌마 이일순씨. 아무도 예상 못한 평범한 시장 상인이 대통령 후보 찬조연설을 한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똑똑한 대학교수나 저명인보다 서민후보 노무현을 가슴으로 설명하고 진심으로 지지한 연설이었습니다.

호남과 영남이 서로 화합해서 지역감정 안 갖고, 노 후보 본인이 서민으로 살았으니 없는 서민들 좀 많이 돌봐달라는 마음에서 연설에 응했다고 합니다. 서거 소식 역시 시장에서 생선을 다듬다가 전해 듣고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이씨에겐 선거 때 다시 자갈치시장을 찾았던 노 후보가 “부산에서 그런 연설을 해준다는 건 대단한 용기”라며 자신을 업어줬던 장면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 오영애 : 대선후보 경선 때 전국을 포장마차로 돌면서 모금활동 전개

말이 대선후보지 당에서조차 지원을 제대로 못 받던 노무현 후보. 당의 난맥상으로 지지율은 바닥. 시민들이 나섭니다. 오씨는 ‘이건 아니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포장마차 전국투어를 하며 선거지원금도 걷고 노무현을 돕자는 호소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건강을 포함해 소중한 것을 많이 잃게 됐지만 “두 딸을 가진 엄마로서 스스로를 위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 차상호 : 대선 때 ‘희망돼지’ 저금통 모으기 운동을 하다 기소된 시민

선거자금이 없어 고전하던 노무현 후보에게 한국 선거사상 초유의 일을 시민들이 벌였습니다. 선거자금과 정치희망을 십시일반 모은 ‘희망돼지 저금통’. 노 후보와 국민에게 모두 희망을 줬지만 정작 그들은 절망적인 법의 현실에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검찰의 선거법 위반 혐의 기소, 변호사를 살 돈이 없어 겪어야 했던 어려움. 노 대통령은 그들에게 큰 빚을 졌고 두고두고 미안해했습니다. 2007년 뒤늦게 그들은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선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 김성례 : 대선 때 아이들 돌 반지 여러 개를 흔쾌히 내놓은 엄마

시민들의 선거혁명은 ‘희망돼지’ 저금통뿐이 아니었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 할머니가 평생 간직하던 금반지를 내놓기도 했고, 하루하루 궁핍하게 살아가던 할머니가 우편환으로 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김씨 역시 고전하는 노무현 대선 후보를 위해 아이 돌반지 여러 개를 들고 의정부 집에서 청량리 유세장까지 무작정 달려가 “선거에 쓰라”며 쾌척했습니다.
○ 김진희 : 과거 시골중학생과 약속 지키기 위해 재임 중 다시 찾은 진해 웅동중학교 학생대표 

야인 시절이던 2001년, 한 후배 소개로 시골중학교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게 됐습니다. 강연 도중 “훗날 대통령이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통령님은 두 가지 약속을 지켰습니다. 대통령이 됐고, 이 학교를 다시 찾았습니다.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는데 바빠서 못 올 뻔하다가 해군사관학교 가는 길에 들러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님 서거 뒤 학생들은 체육관에서 추모식을 갖고 그때 동영상을 보며 슬픔에 젖었습니다.
○ 김순애 : 재임 중 구로동 재중동포 교회를 방문해 격려한 동포 대표

세 번의 짧은 만남, 그리고 긴 이별. 대통령님이 늘 마음 아프게 생각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재중동포였습니다. 20만 명 가까운 동포들이 꿈을 찾아 모국을 찾았지만 대부분 불법체류 신세였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심정으로 단식농성을 했습니다.

대통령님이 불법체류 중인 동포들을 관계기관 만류에도 직접 찾아 고충을 청취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법의 현실을 완전히 넘을 순 없었지만 진심으로 미안해했고 그들은 울며 감격했습니다. 첫 번째 만남. 대통령님이 퇴임할 때 이들 중 많은 동포들이 서울역으로 나와 고향으로 가는 길을 환송했습니다. 두 번째 만남. 이들은 그리움에 다시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재외동포법을 개정했지만 아직도 완전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모국에 와서 고생하는데 대통령으로서 미안한 생각을 많이 가졌다”며 거듭 미안해했습니다. 세 번째 만남. 그게 끝이었습니다. 네 번째 만남은 분향소. 오열 속에 그들은 대통령님과 이별했습니다.
○ 홍성수 : 과거사 진상규명과 대통령님 국가 사과로 억울함 푼 4.3사건 유족 대표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 지난 반세기 논의 자체가 금기된 역사의 상흔. 수십 년 켜켜이 쌓인 그들의 한. 많은 도민들 가슴의 멍을 치유하는 일에 대통령님은 진력을 다했습니다. 2003년 정부차원의 공식보고서인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가 최종 확정되고 같은 해 10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습니다. 또 2006년 4월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위령제에 참석해 원혼들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대통령님의 공식사과로 화해와 상생의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 故 조용수 사장 조카 조웅재 : 과거사 진상규명으로 억울함 푼 사형수 민족일보 故 조용수 사장 유족

군사정권 시절의 수많은 억울한 죽음. 1961년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는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평생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유족들. 참여정부의 과거사 진상규명 노력이 유족들의 한을 푸는 단초가 됐습니다. 2006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권고했고 2008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47년만의 일입니다.
○ 이희아 : 대통령님 초청 청와대 음악회에서 연주한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장애인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였던 대통령님. 청와대에서 장애를 딛고 음악가로 성공한 이들의 초청공연을 마련해 손을 잡고 노래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가난을 극복했듯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이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이희아씨는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아버지이시고 또 가난하고 정말 소외된 분들을 위해서… 정말 착하시고 그러셨는데… 너무나 불쌍하잖아요, 대통령님…”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 조문둘 : 암투병 중 소원이었던 대통령님을 만난 후 세상 떠난 故성민영 학생의 어머니

골육종 암에 이어 급성 골수성 백혈병까지 겹쳐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던 소녀. 소녀에겐 대통령님을 만나보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소녀의 소원을 홈페이지에 올렸고 드디어 대통령님과 만나게 됐습니다. 소녀의 슬픈 처지에 당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너무 아팠던 대통령님은 만나는 내내 소녀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의지의 승리를 기원하며.” 친필서명에는 진심으로 쾌유를 비는 대통령님 마음이 담겨 있었고 소녀는 희망을 잃지 않고 병마와 싸웠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지난해 9월 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소녀가 하늘나라로 간지 여덟 달만에 대통령님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두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다시 반갑게 손을 맞잡고 애틋한 사연을 나누고 있을까요.
○ 강병호 : 봉하마을 장군차 재배를 함께 하며 꿈을 나눈 茶지도자

대통령님 퇴임 후 고향 마을엔 특산물 단감이 과잉공급으로 가격이 떨어지면서 폐원사태가 속출했습니다. 대통령님은 김해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장군차를 희망으로 삼았습니다. 김해 장군차조합 대표 강명호씨가 대통령님과 의기투합했습니다. 茶지도자 강씨는 대통령님과 차 재배 기술을 나눴고 대통령님은 강씨와 차를 통해 엮어낼 희망을 나눴습니다.
○ 주형로 : 오리농법을 대통령님과 봉하마을에 전파한 홍성의 농업지도자

퇴임한 대통령님 얼굴이 새겨진 쌀. 농약을 치지 않고 오리가 논을 누비며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봉하 오리쌀’은 지난해 가을 단연 화제였습니다. 그 본보기는 홍성 문당마을이었고 주씨는 오리농법의 선구자격입니다. 대통령님의 ‘쌀 선생.’ 농업에서 희망을 찾아보려 했던 두 사람의 시도는 봉하마을에서 지금도 무르익고 있습니다.


2009. 7. 9.


                              봉하 전례위원회(위원장 이병완)
출처:나눔뉴스 최종옥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