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세상

퍼팩트 한 40년 공직생활 마감하는 창녕군 김상신 기획실장

daum an 2013. 12. 10. 16:37

그에겐 ‘완벽’, ‘원칙’, ‘철저한 자기관리’, ‘송신(竦身)’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다. 완벽은 수만~수십만에 이르는 대국민행정 서비스가 허술해선 안된다는 뜻이며, 원칙은 공복에게 강요되는 청렴을 일컫는 다. 자기의 정신과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쓸데없는 구설에 오르는 걸 항상 조심하는 것을 자기관리라고 부른다. 송신은 잘못 들으면 쓸데없는 간섭이나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에겐 공무상 해선 안될 실수나 과오를 범하는 부하직원에게 가하는 최소한의 채찍이다. 창녕군 김상신(59세) 기획실장은 40년동안 공직생활을 해오면서 단 한번의 징계도 받지 않았다. 그와 같이 근무한 부하직원 역시 단 한사람도 징계 위 회부된 적이 없다. “그와 함께 근무하면 배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강한 소신과 추진력 때문에 그 당시엔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불평불만을 하지만 지나고 나면 거름이 되었다는 것 깨닫게 된다” 공무원 노조 석상훈 지부장은 “개인관리가 너무 철저하다보니 적아닌 적도 많다”고 덧붙인다. 공직사회에서 서기관 자리는 ‘타고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소리가 일반적이다. 모든 공무원들의 ‘로망’인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40년동안 얼마나 많은 유혹과 나태, 고충이 따랐을지 미뤄짐작이 간다. 마지막 업무인 내년도 예산결산심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군의회와 막판 조율에 여념이 없는 김 실장을 만나 지난 40년간 공직생활의 소회를 들어봤다. -편집자 主-

 


김 실장은 1954년 성산면 운봉리에서 태어나 성산초와 대성중학교, 대구중앙상업고교를 졸업하고 1975년 공직에 첫 발을 디뎌 고향인 성산면사무소에 발령을 받았다. 면사무소 근무시 혼자 야근을 하고 있던 그를 본 당시 윤종한 면장은 성실근면함을 인정해 군청 내무과(현 행정과) 행정계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나이 25세로 10년간 그 자리에서 근무하고 35세인 89년 계장으로 승진했다. 김 실장의 승진 주기는 계장 10년, 사무관 10년, 서기관 10년으로 강산이 한번 바뀔때마다 해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신기한 면이 있다. 지난 3일 인터뷰차 사무실을 들렀을 때 그의 책상위에 공병호 박사의 ‘10년 법칙’이 놓여 있었다.  

“10년이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간이 될수 있고, 또 10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명품이 될수 있고 최정상의 반열에 오를수도 있지만, 짧지 않은 시간과 적지 않은 노력, 그리고 쉽지 않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김 실장은 이 책에 적힌 이 글귀를 늘상 외우다시피하며 매사에 매순간 최선을 다해왔다. 공직생활 중 보람의 하나라 김 실장은 군청사 개청식을 담당했을 때다. “도청 서무과에가사 도청 개청식 관련서류 홀타 3권을 빌려와 우리군청 개청식 행사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당시만해도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여관에 틀어 박혀 꼬박 일주일간 갱지에 펜으로 직접 써서 1984년 4월21일 별탈없이 군청사 개청식을 마무리 했다. 

지금 군청사에 심겨준 정원수 거의가 개청식 당시 심은 것이다. 기획계장 시절엔 군수지시로 ▲밀양댐 상수원 우리군 인입 문제 ▲남지제 정비사업 등 대형사업에 대한 자료를 작성하면서 “과연 시행될 수 있을 까”라는 의구심도 가졌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3년 5개월간 대합면장(당시 교체된 군수와의 갈등 때문으로 보여짐)을 지내면서 태풍매미로 인한 큰 수해도 당했고, 겨울 각종 화재발생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늘 현장에서 면민들과 함께 울고 웃고 했던 때가 가장 보람 있었던 공직생활이었음을 김 실장은 힘주어 말한다. 지금도 대합면민들은 자신들의 면장을 보기 위해 어렵게 지은 마늘, 양파, 복숭아등을 들고 찾아 얼굴만 보고 가기 일쑤다.  

김 실장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행정과장때다. 대부분의 공무원은 좋은 보직, 빠른 승진을 원하기에 인사를 총괄하는 행정과장은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화살’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자리다. 당시 노조홈피에는 무기명으로 당시 행정과장이던 김실장을 향한 온갖 음해와 독설로 도배되다 시피했다. 억울함과 분노가 목젖까지 차 올라 ‘법적 대응도 할까’는 생각도 여러차례 했지만, “승진과 보직이 생명인 공무원 생활이니 그럴수도 있겠다”고 마음을 추스르고 ‘시간이 약’이란 어른들의 가르침을 되뇌이며 삭였다고 한다.  

김상신 실장은 내일모레 떠날 사람답지 않게 후배 공무원들에게 창녕군의 발전에 대한 구상을 밝히고 함께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전국 최고 수온을 자랑하는 부곡온천, 우포늪과 많은 문화재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이용한 지역특성에 맞는 자원으로 잘 활용해야 하며, 대합산단조성과 중견기업 유치와 인근 지역의 대단위 산업단지와 연구 첨단산어브 주거 복합단지인 현풍의 테크노폴시스등 모두가 창녕군의 지각을 변동시킬만한 발전 요인으로 삼아야 할 것이란 것. 이를 위해선 공무원들의 역할이 여느때 보다 절실하다는 게 김 실장의 주문이다. 후배 공무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긍정적 사고와 정열적 업무 수행을 위해 ‘건강관리 철저’ ▲선의의 피해을 예방하고 공익목적 달성을 위해 ‘원칙중심의 업무처리’ ▲능률적이고 신속한 공무처리를 위해 ‘항상 공부를 해야한다’는 3가지를 특별히 당부했다.  

김 실장은 퇴직후,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을 자주 찾아 뵙고, 아들과 딸집도 방문해 자식으로 부모로 돌아가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피력했다.  

항상 깔끔한 양복에 말끔히 잘 다려진 눈에 부실 정도의 흰 와아셔츠, 아무리 더워도 항상 단정한 넥타이, 까도남보다 더 훤한 얼굴, 반듯한 자세로 후배 공무원의 모범이 되고자 했던 김상신 실장. 그가 없는 창녕군청이 한 동안 텅 빈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을 지도 모든 다는 생각이 왜 앞서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