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상

강경구의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daum an 2009. 8. 2. 01:02

[강경구의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역사, 문화의 도시, 민주성지 마산의 보물들-1

 

강경구 수석논설위원 /시사우리신문

 

▲ 마산의 9경으로는 무학산, 돝섬해상유원지, 저도연육교, 국립3.15민주묘지, 어시장, 마산문신미술관, 마산항야경, 팔용산돌탑, 의림사계곡 등입니다.

역사, 문화의 도시, 민주성지 마산의 보물들-1

1. 마산의 역사와 현황

경남 중남부와 남해안의 마산만에 연해 있는 항구도시로 1995년 창원군의 5개 읍면이 편입되었습니다. 1970년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공장이 들어서고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번창하게 되었으며 1개읍 4개면 60개동으로 면적 329.09㎢이고 인구는 약 40만8300여명입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마산지역에 포상팔국 중 하나인 골포국이 위치하였고 209년에 가야연맹에 병합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 757년에 골포국에서 합포현으로 개칭되어 의안군(창원)의 영현이었습니다.

그 후 고려시대, 1018년에 금주(김해)의 속현이었다가 1280년에 고려와 몽골연합군의 일본정벌근거지였으며 그 후 회원현으로 승격되었고 조선 초 1408년에 의창현과 회원현이 합쳐 창원부로 승격되어 경상우도 병마절도 사령을 두었으며 1413년 창원도호부로 개칭되었습니다.

창원부의 한 포구에 불과한 마산포는 1899년 개항으로 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미 경상도의 해안상업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1899년 개항이래 기존시가지 앞쪽 신마산지역에 각국의 영사관 등이 들어서면서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1905년 을사조약으로 마산 이사청이 설치되었고 내륙과 빈번한 왕래가 이루어졌으며 1914년 마산부로 분리되었습니다.

1949년 마산시로 되었으며 1960년 3.15의거, 1970년 한국최초의 수출자유지역지정, 1973년과 1977년 고속도로개통 1980년 부ㆍ마항쟁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한국현대사가 증축된 곳입니다. 특히 4ㆍ19의거의 시발이 된 1960년의 3ㆍ15의거, 민주화의 기원이 된 1980년 부ㆍ마항쟁은 한국현대사에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1970년 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서면서 인구는 18만7000여명이었고 1980년 38만 7000여명 1990년 50만 5000여명이었던 인구가 주위의 읍면이 편입되었음에도 1996년 43만 명으로 줄었고 그 후 주위의 아파트단지 조성 등의 인구 유입조건이 있었음에도 현재 인구는 증가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내에는 마산시립박물관, 마산시립문신박물관이 있는 추산공원, 용마산 중턱에 조성되어 이은상선생의 가고파노래비와 이원수선생의 고향의 봄 노래비가 있고 도서관, 마산 문화원이 있는 산호공원, 각종 휴식 공간이 있는 양덕삼각지공원이 있으며 앞바다에는 돝섬해상공원이 있고, 국립 3.15의거성역공원이 구암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산문학관, 마산음악관, 가곡전수관, 종합운동장, 우리누리문화센터, 3.15아트센터 등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축제로는 대동제, 3.15의거기념문화제, 마산국제연극제, 노산추모제, 마산예술제, 진동큰줄다리기, 진동불꽃낙화와 미더덕축제, 마산가고파국화축제, 마산어시장축제, 만날제, 시민의날축제 등의 각종 문화예술제전이 있습니다.

마산의 9경으로는 무학산, 돝섬해상유원지, 저도연육교, 국립3.15민주묘지, 어시장, 마산문신미술관, 마산항야경, 팔용산돌탑, 의림사계곡 등입니다.

2. 마산의 우리 문화유산들

문화예술의 도시 마산의 지정문화재는 의외로 적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국보, 보물, 사적, 명승, 중요무형문화재 등)로는 2006년 6월 토지구획정리사업과정에서 발견된 사적 제472호 마산진동리 유적이 유일합니다.

시·도지정문화재(지방지정문화재, 경남도지정문화재)로 경남유형문화재는 제72호 의림사삼층석탑을 비롯해 6점, 경남무형문화재는 제6호 마산농청놀이를 비롯해 3점, 경남 기념물은 제52호 이산성지를 비롯해 9점, 경남문화재자료는 제2호 관해정을 비롯해 7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