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세상

미-북 관계정상화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daum an 2009. 6. 11. 17:34

미-북 관계정상화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임동원 전국정원장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 특별강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 특별강연회가 6월11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이 강연회에는 행사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의 개회사에 이어 특별강연이 있다. 박지원(당시 문화관광부 장관·대북특사)의 “6.15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기까지”, 임동원(당시 국정원장·대북특사)의 “6.15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교훈”, 문정인(연세대교수, 당시 특별수행원)의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6.15 공동선언”에 대한 강연이 있다. 이 가운데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강연문(아래 요약)을 입수, 지상 중계한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 강연<요약>
 
반세기 불신과 대결의 냉전 끝에 어렵게 마련된 남북화해협력구도가 위기에 처하고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6.15남북정상회담 9주년을 맞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우리민족의 나갈 길을 밝혀 준 6.15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며 이를 지켜 나가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다.
 
남북정상회담의 배경
 
국민의 정부는 IMF 금융위기와 냉각된 남북관계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이에 더하여 안보위기까지 겹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북한의 금창리 지하핵시설의혹(나중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짐)이 불거지고, 대포동1호 위성로켓발사로 미국 강경파들이 정밀공중공격을 주장하는 등 한반도에는 긴장이 고조되어 갔다.

▲ 김정일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하고, 인내심을 갖고 일관성 있게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정부는 정경분리원칙을 채택하여 경제적 접근을 시도했고,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관광사업을 추진했다. 금강산관광사업은 긴장을 완화하고 국가신인도를 높여 금융위기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는 한편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는데도 기여했다.
한편 국민의 정부는 미국에 대해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이다. 압박과 제재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상호위협감소를 통해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안보환경을 조성하고 상호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숲을 보고 나무를 논해야 하며,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한반도냉전을 종식시키는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접근으로 대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우리의 제의를 받아드려 한미공조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과 함께 미국과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한 것이다.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환기적 사건을 통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나가는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
 
위험을 무릅쓰고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심장부에 찾아가신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2박3일간 솔직한 의견 교환과 협의를 통해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남북의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부터 논의했다.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뿐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상호 불가침을 확인했다. 또한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 해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긴요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 후 미-북 미사일협상이 진척되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미-북정상회담을 준비한 것을 기억한다.

통일문제는 남북관계 개선 발전의 대전제가 된다.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을 고집하는 한 남북관계개선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정상은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자주와 평화의 원칙에 따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완전통일에 앞서 남과 북이 다방면으로 서로 교류 협력하며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상태’부터 실현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에 이르는 긴 과정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촉진시키기 위한 협력기구로서 ‘남북연합’(북측은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 호칭) 형성이 필요하다는데도 합의했다.

두 지도자는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것은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다방면의 교류 협력을 실천하면서 상호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합의했다.

평양방문 전에는 "남북정상회담은 만났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큰 성과를 올리자 우리 국민은 95%내외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나타냈다. 또한 미국,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입을 모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고, 유엔총회는 만장일치로 6.15남북공동선언을 환영, 지지하는 총회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6.15공동선언 의의와 교훈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6.15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이 나아갈 평화와 통일의 길을 밝혀 주었다. 평화통일은 우리가 성취해야할 목표이지만 남이 가져다주거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힘을 합쳐 화해 협력을 통해 꾸준히 만들어 나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는 ‘평화적 통일’을 명시한 우리 헌법과, 온 국민의 뜻을 모아 마련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과 합치되는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아닌 새로운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올바른 통일철학 없이 '승패의 게임'을 추구한다면 평화와 통일은 멀어지고, 긴장은 고조되고 전쟁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6.15공동선언은 실천선언이다. 우선 다섯가지 중점사업에 합의하여 실천에 옮긴 것이 남북관계 개선의 추동력이 되었다.  평화회랑을 만들어 민족의 대동맥인 철도와 도로가 연결 운행되기 시작했다. 남측의 자본·기술과 북측의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성공단이 건설되면서 1백여개 기업에서 4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193만명이 금강산에 다녀왔다. 4천 가족 2만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고, 경제․사회․문화 교류를 위해 55만명이 남북을 왕래했다. 남북 당국간 회담도 240여회 개최되는 등 시작으로서는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루었다. 현 정부가 집권한 후 개성공단사업 하나만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 다른 모든 협력 사업들이 중단되고, 상호신뢰가 파탄된 것은 대단히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속히 원상회복하고 활성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6.15공동선언은 지난 반세기의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다. 6.15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이 실천에 옮겨지면서 남북 간에는 적대의식이 수그러들고, 긴장이 완화되었다. 민족공동체의식이 함양되면서 상호신뢰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남북이 화해협력하기로 한 6.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부터 밝히라"는 북측의 요구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긍정적인 호응을 얻는데 실패하고 있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신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6.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계승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다시 화해와 협력의 길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6.15공동선언은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우되던 우리가, 우리 힘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하고, 민족자존을 드높였다. 한미동맹만 잘되면 남북관계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외세 의존적 자세가 아니라, 민족문제를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합의하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지지와 협조를 얻을 수 있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는 서로 대립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비핵화는 국제공조로, 남북관계 개선 발전은 민족공조로 양자를 병행 추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받들어 분단을 고착시키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적극적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경제협력을 활성화하여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군비통제를 실현하는 한편 ‘남북연합’을 구성하여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구현해 나가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6.15공동선언' 준수를 다짐하고, 우리가 중단시킨 금강산관광사업의 즉각 재개, 인도적 지원 제공, 개성공단사업 활성화조치 등,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대화를 유도하여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북한도 대남비방과 군사적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와 공존공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미-북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져야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지난 20년의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압박과 제재만으로는 역효과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처럼,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설득하여 한반도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이룩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강연 연사 소개/임동원=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당시 국정원장·대북특사.